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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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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내가 기억할 수 있는 첫 봄의 일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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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그 봄에 일어난 일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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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태허산에 비가 계속해서 내린지 10일째 되는 날이었다.</p>
</mono>
<mono pageend="true"> 사부는 평소와는 다르게 외출하지 않고, 손님을 맞지도 않았다. 대사저와 둘째 사저는 바쁘게 숙소를 오고 가고 했지만, 그들이 뭘 하는지 알진 못했다.</mono>
<mono inline="true">
<p/>
<p/>
<p>많지는 않았지만 끊임없는 비가 내려서, 어렸을 땐 봄비란 게 원래 이렇게 멈추지 않고 내리는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며칠 뒤, 비가 잦아들었다.</p>
</mono>
<mono pageend="true">
<p/>
<p/>
<p>비가 그치자, 사부는 방을 나와 대사저와 함께 산을 내려갔다.</p>
</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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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 chara="000">「조우, 갑시다.」</dialog>
<text>사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말만 뱉었다.</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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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대사저는 우릴 향해 손을 흔들며, 사부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두 사람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며, 작아지더니, 모퉁이를 돌자 보이지 않게 되었다.</p>
</mono>
<mono pageend="true">
<p/>
<p/>
<p>몸을 돌리니, 내가 망설이는 동안, 셋째 사저와 넷째 사저가 다시 집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옆에 있던 여섯째 사형은 둘째 사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나처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p>
</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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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 chara="009">「사부님은…… 얼마나 나가있어야 하는 건가요?」</di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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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나는 둘째 사저에게 물었다.</text>
<text>사부가 날 산으로 데려왔을 때,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말하는 법까지 잊었었다.</text>
<dialog chara="004">「나도 잘 모르겠어——짧으면 3일에서 5일일 수도 있고, 길면 2~3개월이겠지.」</dialog>
<text>둘째 사저 소미가 답했다.</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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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 pageend="true">
<p/>
<p>사부와 대사저 임조우가 없는 동안, 태허산은 둘째 사저가 관리한다. 열세 살에 불과했지만, 사부는 그녀를 깊이 신뢰했다. 태허의 일곱 제자 중에서, 그녀와 대사저만이 사부와 함께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p>
</mono>
<mono pageend="true">
<p/>
<p>사저는 표정 없이 먼 산림을 바라보았다.</p>
<p/>
<p>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em italic]어쩌면 그녀에겐 보였을지도 모르겠다고 난 생각했다.[/em] 사부와 조우 사저가 조금씩 멀어져 가는 모습을.</p>
</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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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 chara="004">「너도 산을 내려가 보고 싶은 거니?」</dialog>
<text>갑자기 둘재 사저가 물어왔다.</text>
<motion chara="004" action="img_trans" img="苏湄-笑-幼年-中景"/>
<dialog chara="009">「어…… 전……」</dialog>
<dialog chara="004">「……뭘 그렇게 놀래. 우리 여섯 모두 이렇게나 활발한데, 어떻게 1년 내도록 산에만 있을 수 있겠니? 여기서만 지내는 게 질린다면, 나한테 말해, 나랑 같이 나갔다 오면 되니까.」</dialog>
<motion chara="004" action="img_trans" img="苏湄-认真-幼年-中景"/>
<dialog chara="009">「하지만…… 사부님이……」</dialog>
<text>오직 임조우와 소미만이 산을 내려갈 수 있다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라 생각했다.</text>
<dialog chara="004">「아, 사부님도 알고 계실 거야.」</di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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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 chara="004">
<p>「하지만, 사부님은 신경쓰지 않아. 아이들은 결국 자라날 거고, 빠르든 늦든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을거니까. 바깥 세상엔 위험이 많이 도사리고 있지만, 절세 무공이 있는데 뭐가 무섭겠어?</p>
<p>그러니 사매들이 밖으로 몰래 나가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보단, 나랑 같이 나가서 내가 돌봐주는 게 낫지——사부님도 후자를 선택할 거야.」</p>
</dialog>
<mono inline="true">
<p/>
<p>둘째 사저는 가볍게 말하였지만,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다 안다는 것처럼 들렸다.</p>
</mono>
<mono inline="true"> 상식에 벗어난 일이라도, 그녀의 말을 들으면 순리가 있어 보였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mono>
<mono pageend="true"> 산을 내려간다…… 아, 내가 태허산에 온지 3개월이 되었을 때, 벽돌과 기와, 풀과 나무 모두 새로움이 사라져 점점 흥미를 잃게 되었다. 사부를 만나기 전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이 태허산은 내가 아는 세계의 전부이자 그 이상이었다……</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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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 inline="true">
<p/>
<p/>
<p>……그 이상……</p>
</mono>
<mono inline="true">
<p/>
<p/>
<p>……더는 위험할 수도……</p>
</mono>
<mono pageend="true">
<p/>
<p/>
<p>둘째 사저가 가볍게 건넨 한마디가 머릿속에 흘러들어오자, 갑자기 바닷가가 떠올랐다.</p>
</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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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촤——</p>
<p/>
<p>스——스슥——</p>
</mono>
<mono pageend="true">
<p/>
<p/>
<p>그때, 사부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p>
</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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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상한 전율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찾아와, 전혀 멈출 방법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몸을 감쌌다……</text>
<dialog chara="099">「야——」</dialog>
<text>(사부님은 의미 없는 일을 하지 않아, 기억하지 마, 기억하지 마.)</text>
<dialog chara="099">「야!」</di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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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둘째 사저의 외침이 날 깨웠다. 소미는 내 앞에 쪼그려 앉아, 긴장한 모습으로 날 보았다.</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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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 chara="004">「너 괜찮은 거야?」</dialog>
<dialog chara="009">「괜찮아요……」</di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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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미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곧 진정했다.</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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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 chara="004">「미안해, 그래선 안됐는데…… 아, 아직 너무 이른 거겠지. 막 입문했는데, 산에서 지내는 것도 아직 익숙하지 않을 거고.」</dialog>
<dialog chara="009">「괜찮아요, 사저…… 고마워요.」</di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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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 chara="004">「너 혹시 겁먹은 거야?」</dialog>
<text>둘째 사저가 물었다.</text>
<dialog chara="004">「너 바깥 세상이 무서운 거야?」</dialog>
<text>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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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 chara="004">「그랬구나.」</dialog>
<text>소미는 생각에 빠졌다.</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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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 chara="004" inline="true">「그럼, 사부님이랑 같이 가면 되겠네.</dialog>
<dialog chara="004"> 내가 사부님에게 말해둘 게…… 다음 산에서 내려가거든, 널 데리고 가도록.」</di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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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 chara="009">「아… 안 그러셔도!」</dialog>
<text>난 서둘러 손을 휘저었다. 어떻게 이런 사소한 일로 사부에게 폐를 끼칠 수 있을까? 하지만 내 절박한 거절이 둘째 사저에겐 다르게 보인듯했다.</text>
<motion chara="004" action="img_trans" img="苏湄-宿命-幼年-中景"/>
<dialog chara="004">「정말이야? 그럼 네가 편한 대로 해. 하지만 소의야, 영원히 이 산에서만 살 순 없어…… 여긴 우리에게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니야.」</dialog>
<dialog chara="004">「빠르든 늦든, 너도 분명 알게 될 거야. 가치없는 곳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너랑 나, 우리들이 태허산을 떠날 때면……」</dialog>
<text>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져갔다.</text>
<dialog chara="004">「……태허산을 떠날 때면.」</dialog>
<text inline="true">휘익——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저가 휘파람을 분 것이었다.</text>
<text>
<p/>
<p>그녀는 날 쳐다보았다. 마치 뭔가 할 말을 주저하는 듯. 하지만 잠시 머뭇거린 후, 다시 입을 열었다.</p>
</text>
<dialog chara="004" inline="true">「……바깥세상은 무서워할 만해. 잔혹하고 위험하니까. 이곳 같은 낙원이랑은 완전 달라.</dialog>
<dialog chara="004"> 하지만 거기엔 아름다움도 있어.」</di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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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 chara="004">「무서워하지 마, 소의야, 사부님만 곁에 있으면, 모든 두려운 것, 잔혹한 것, 위험한 것들 모두 떨쳐낼 수 있으니까.」</dialog>
<dialog chara="004">「사부님만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겁먹지 않아도 돼.」</di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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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
<p/>
<p>사부님만 곁에 있으면……</p>
</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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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4경(오전 1~3시)쯤의 밤이었다. 주위 모든 것들이 시끄러웠다.</p>
</mono>
<mono pageend="true">
<p/>
<p/>
<p>뒤로는 커다란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태허산은 마치 대낮처럼 밝았다. 먼 곳의 산림에서 드문드문 목소리가 들리는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달려왔으려나? 그리고 선인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항상 산기슭을 배회하던데, 지금쯤이면 발이 빠른 사람은 이미 근처에 있겠지……</p>
</mono>
<mono pageend="true">
<p/>
<p/>
<p/>
<p/>
<p>[em italic](이게 바로 바깥세상이다. 무서운 것들로 가득하다.)[/em]</p>
</mono>
<mono inline="true">
<p/>
<p>어느 때 같으면, 사람들이 시끌벅적 하는 걸 보고 그대로 안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보고 싶지 않다. 누구든 보기가 겁난다. 지금의 난 누구에게도 보여선 안되고, 누구에게도 알아차려져선 안된다——</p>
</mono>
<mono inline="true">
<p/>
<p/>
<p>그 누구에게도 「염향검」의 머리카락이 불에 그을려 검게 된 것을 보여선 안된다.</p>
</mono>
<mono inline="true">
<p/>
<p>그 누구에게도 「진소의」의 두 손이 피에 물든 걸 보여선 안된다.</p>
</mono>
<mono pageend="true">
<p/>
<p>그 누구에게도 「태허의 일곱째 제자」가 한 구의 시체를 안고 있는 걸 보여선 안된다.</p>
</mono>
<mono pageend="true">
<p/>
<p/>
<p/>
<p/>
<p>——선인의 시체.</p>
</mono>
<text>[em italic](만약 누군가 날 보게 된다면, 만약 둘째 사저가 이를 알게 된다면…… 난 어떻게 될까?)[/em]</text>
<text>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밤을 밝히는 반딧불이처럼 먼 산림에서 불꽃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text>
<text>——두렵다.</text>
<mono inline="true">
<p/>
<p>마음이 어지럽다.</p>
</mono>
<mono inline="true"> 사부가 죽었을 때, 검심이 깨지는듯한 소리가 들린듯했다——충격, 후회, 고통이 수년간 내가 단련한 마음속의 잔잔한 호수를 깨뜨렸지만, 그땐 당황해서 의식하지 못했다……</mono>
<mono pageend="true"> 지금에 이르러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철저히 가루가 되도록 부서져, 더 이상 되돌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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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안고 있던 몸뚱어리가 내 손을 벗어나, 옆으로 굴러떨어졌다.</p>
</mono>
<mono inline="true">
<p/>
<p/>
<p>지면은 부드러운 흙과 여린 향을 가진 풀로 덮여있어, 아프진 않았다.</p>
</mono>
<mono pageend="true">
<p/>
<p/>
<p>사부의 유체, 손가락에 전해지는 얼음처럼 차가운, 이미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몸뚱어리——사부의 손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 천하무적의 적연진인……</p>
</mono>
<mono pageend="true">
<p/>
<p/>
<p/>
<p/>
<p/>
<p/>
<p> 사부는 이미 죽었다.</p>
</mono>
<text>……</text>
<mono inline="true">
<p/>
<p/>
<p>머리와 어깨 위로, 무언가가 느껴진다. 마치 비가 내리듯, 하지만 그건 불에 탄 재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다.</p>
</mono>
<mono inline="true"> 나는 사부를 안고, 조심해서 산을 내려갔다.</mono>
<mono inline="true"> 나는 생각했다. 사부는 이미 죽었지만, 그녀는 선인이다. 선인은 불사불멸이다. 두려움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저들이 두렵다. 외부인이 두렵다. 죄악이 두렵다. 다음 생이 두렵다. 미래가 두렵다. 지금 눈앞에 일어난 일이 두렵다……</mono>
<mono pageend="true"> 두려운 게 너무나도 많아, 마치 하늘 위를 흩날리는 재처럼, 마치 산길에서 피어오르는 불빛처럼, 빽빽하게, 사방팔방으로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mono>
<mono inline="true">
<p/>
<p/>
<p>하지만, 사부님만 곁에 있으면……</p>
</mono>
<mono inline="true">
<p/>
<p/>
<p>사부님만 곁에 있으면……</p>
</mono>
<text>나는 사부를 안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조심하며, 조심하며, 사람들을 피해서.</text>
<mono pageend="true">
<p/>
<p/>
<p>「사부님만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겁먹지 않아도 돼.</p>
</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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