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할 수 있는 첫 봄의 일이었다.

그 봄에 일어난 일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태허산에 비가 계속해서 내린지 10일째 되는 날이었다.

사부는 평소와는 다르게 외출하지 않고, 손님을 맞지도 않았다. 대사저와 둘째 사저는 바쁘게 숙소를 오고 가고 했지만, 그들이 뭘 하는지 알진 못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끊임없는 비가 내려서, 어렸을 땐 봄비란 게 원래 이렇게 멈추지 않고 내리는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며칠 뒤, 비가 잦아들었다.

비가 그치자, 사부는 방을 나와 대사저와 함께 산을 내려갔다.

「조우, 갑시다.」 사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말만 뱉었다.

대사저는 우릴 향해 손을 흔들며, 사부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두 사람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며, 작아지더니, 모퉁이를 돌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몸을 돌리니, 내가 망설이는 동안, 셋째 사저와 넷째 사저가 다시 집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옆에 있던 여섯째 사형은 둘째 사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나처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사부님은…… 얼마나 나가있어야 하는 건가요?」 나는 둘째 사저에게 물었다. 사부가 날 산으로 데려왔을 때,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말하는 법까지 잊었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짧으면 3일에서 5일일 수도 있고, 길면 2~3개월이겠지.」 둘째 사저 소미가 답했다.

사부와 대사저 임조우가 없는 동안, 태허산은 둘째 사저가 관리한다. 열세 살에 불과했지만, 사부는 그녀를 깊이 신뢰했다. 태허의 일곱 제자 중에서, 그녀와 대사저만이 사부와 함께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사저는 표정 없이 먼 산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em italic]어쩌면 그녀에겐 보였을지도 모르겠다고 난 생각했다.[/em] 사부와 조우 사저가 조금씩 멀어져 가는 모습을.

「너도 산을 내려가 보고 싶은 거니?」 갑자기 둘재 사저가 물어왔다. 「어…… 전……」 「……뭘 그렇게 놀래. 우리 여섯 모두 이렇게나 활발한데, 어떻게 1년 내도록 산에만 있을 수 있겠니? 여기서만 지내는 게 질린다면, 나한테 말해, 나랑 같이 나갔다 오면 되니까.」 「하지만…… 사부님이……」 오직 임조우와 소미만이 산을 내려갈 수 있다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라 생각했다. 「아, 사부님도 알고 계실 거야.」

「하지만, 사부님은 신경쓰지 않아. 아이들은 결국 자라날 거고, 빠르든 늦든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을거니까. 바깥 세상엔 위험이 많이 도사리고 있지만, 절세 무공이 있는데 뭐가 무섭겠어?

그러니 사매들이 밖으로 몰래 나가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보단, 나랑 같이 나가서 내가 돌봐주는 게 낫지——사부님도 후자를 선택할 거야.」

둘째 사저는 가볍게 말하였지만,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다 안다는 것처럼 들렸다.

상식에 벗어난 일이라도, 그녀의 말을 들으면 순리가 있어 보였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산을 내려간다…… 아, 내가 태허산에 온지 3개월이 되었을 때, 벽돌과 기와, 풀과 나무 모두 새로움이 사라져 점점 흥미를 잃게 되었다. 사부를 만나기 전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이 태허산은 내가 아는 세계의 전부이자 그 이상이었다……

……그 이상……

……더는 위험할 수도……

둘째 사저가 가볍게 건넨 한마디가 머릿속에 흘러들어오자, 갑자기 바닷가가 떠올랐다.

촤——

스——스슥——

그때, 사부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상한 전율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찾아와, 전혀 멈출 방법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몸을 감쌌다…… 「야——」 (사부님은 의미 없는 일을 하지 않아, 기억하지 마, 기억하지 마.) 「야!」 둘째 사저의 외침이 날 깨웠다. 소미는 내 앞에 쪼그려 앉아, 긴장한 모습으로 날 보았다. 「너 괜찮은 거야?」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미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곧 진정했다. 「미안해, 그래선 안됐는데…… 아, 아직 너무 이른 거겠지. 막 입문했는데, 산에서 지내는 것도 아직 익숙하지 않을 거고.」 「괜찮아요, 사저…… 고마워요.」 「너 혹시 겁먹은 거야?」 둘째 사저가 물었다. 「너 바깥 세상이 무서운 거야?」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랬구나.」 소미는 생각에 빠졌다. 「그럼, 사부님이랑 같이 가면 되겠네. 내가 사부님에게 말해둘 게…… 다음 산에서 내려가거든, 널 데리고 가도록.」 「아… 안 그러셔도!」 난 서둘러 손을 휘저었다. 어떻게 이런 사소한 일로 사부에게 폐를 끼칠 수 있을까? 하지만 내 절박한 거절이 둘째 사저에겐 다르게 보인듯했다. 「정말이야? 그럼 네가 편한 대로 해. 하지만 소의야, 영원히 이 산에서만 살 순 없어…… 여긴 우리에게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니야.」 「빠르든 늦든, 너도 분명 알게 될 거야. 가치없는 곳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너랑 나, 우리들이 태허산을 떠날 때면……」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져갔다. 「……태허산을 떠날 때면.」 휘익——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저가 휘파람을 분 것이었다.

그녀는 날 쳐다보았다. 마치 뭔가 할 말을 주저하는 듯. 하지만 잠시 머뭇거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바깥세상은 무서워할 만해. 잔혹하고 위험하니까. 이곳 같은 낙원이랑은 완전 달라. 하지만 거기엔 아름다움도 있어.」 「무서워하지 마, 소의야, 사부님만 곁에 있으면, 모든 두려운 것, 잔혹한 것, 위험한 것들 모두 떨쳐낼 수 있으니까.」 「사부님만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겁먹지 않아도 돼.」

사부님만 곁에 있으면……

4경(오전 1~3시)쯤의 밤이었다. 주위 모든 것들이 시끄러웠다.

뒤로는 커다란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태허산은 마치 대낮처럼 밝았다. 먼 곳의 산림에서 드문드문 목소리가 들리는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달려왔으려나? 그리고 선인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항상 산기슭을 배회하던데, 지금쯤이면 발이 빠른 사람은 이미 근처에 있겠지……

[em italic](이게 바로 바깥세상이다. 무서운 것들로 가득하다.)[/em]

어느 때 같으면, 사람들이 시끌벅적 하는 걸 보고 그대로 안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보고 싶지 않다. 누구든 보기가 겁난다. 지금의 난 누구에게도 보여선 안되고, 누구에게도 알아차려져선 안된다——

그 누구에게도 「염향검」의 머리카락이 불에 그을려 검게 된 것을 보여선 안된다.

그 누구에게도 「진소의」의 두 손이 피에 물든 걸 보여선 안된다.

그 누구에게도 「태허의 일곱째 제자」가 한 구의 시체를 안고 있는 걸 보여선 안된다.

——선인의 시체.

[em italic](만약 누군가 날 보게 된다면, 만약 둘째 사저가 이를 알게 된다면…… 난 어떻게 될까?)[/em] 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밤을 밝히는 반딧불이처럼 먼 산림에서 불꽃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두렵다.

마음이 어지럽다.

사부가 죽었을 때, 검심이 깨지는듯한 소리가 들린듯했다——충격, 후회, 고통이 수년간 내가 단련한 마음속의 잔잔한 호수를 깨뜨렸지만, 그땐 당황해서 의식하지 못했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철저히 가루가 되도록 부서져, 더 이상 되돌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안고 있던 몸뚱어리가 내 손을 벗어나,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지면은 부드러운 흙과 여린 향을 가진 풀로 덮여있어, 아프진 않았다.

사부의 유체, 손가락에 전해지는 얼음처럼 차가운, 이미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몸뚱어리——사부의 손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 천하무적의 적연진인……

사부는 이미 죽었다.

……

머리와 어깨 위로, 무언가가 느껴진다. 마치 비가 내리듯, 하지만 그건 불에 탄 재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사부를 안고, 조심해서 산을 내려갔다. 나는 생각했다. 사부는 이미 죽었지만, 그녀는 선인이다. 선인은 불사불멸이다. 두려움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저들이 두렵다. 외부인이 두렵다. 죄악이 두렵다. 다음 생이 두렵다. 미래가 두렵다. 지금 눈앞에 일어난 일이 두렵다…… 두려운 게 너무나도 많아, 마치 하늘 위를 흩날리는 재처럼, 마치 산길에서 피어오르는 불빛처럼, 빽빽하게, 사방팔방으로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만 곁에 있으면……

사부님만 곁에 있으면……

나는 사부를 안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조심하며, 조심하며, 사람들을 피해서.

「사부님만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겁먹지 않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