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공화국의 위령비에요. 뒤로는 유해를 회수할 수 없었던 전사들의 이름이 새겨져있죠…… ……「별을 이야기하는 자」들은 유해를 남기지 않으니까요. ……유해를 남기지 않는다고요?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네, 별을 이야기하는 자가 치명상을 입으면,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빠르게 무너져내리기 시작하죠…… 모래가 되듯 사라져버려요. …… 아하하…… 끔찍한 얘기를 생각 없이 내뱉은 것 같네요…… 그래도 저희가 신경 쓴다고 딱히 달라질 건 없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적어도 「유해 수습」을 위해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 아, 그렇지——다들 제 어깨에 있는 장식이 신경 쓰이시나 봐요? 그거…… 계급장 같은 건가요? 맞아요. 「부 지휘관」을 의미해요. 규정상 요새에 들어갈 때 꼭 착용해야만 하죠. 하지만, 갑옷을 입을 때 이런 딱딱한 걸 차고 있으면…… 잠깐은 괜찮더라도, 나중엔 정말 불편해져요. 그래서 저랑 병사들은 평소엔 떼어두고 다니죠! 하하하하. 그…… 실은…… 그 갑옷에 대해,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롤랑 씨는 이미 붕괴능에 저항력이 있는데——그런 무거운 방호구는 필요 없지 않나요? 흠…… 단순히 기동성만 생각하면 그렇기는 한데……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한데——병사들은 매일 이 무거운 장비를 조작해야 하는데, 저만 특별한 대접을 받는 건 좀 그렇달까요? 평소에 병사들이 어떤 고충을 겪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신속함과 유연함이 필요한 전장에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죠. ……지휘관이 되면, 매 순간 내리는 명령들이——수많은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짓게 되니까요. 그러니 군인이라면 누구나 꼭 명심해야해요. 자신의 선택에 누군가의 목숨이 걸려있다는 것을. …… 아…… 정말, 제가 또 무거운 주제로 돌려버리고 말았네요. 어서 가요! 계곡 너머——요새로 향하는 터널로! 이거…… 철로 아냐? 여기 기차 같은 거라도 다니는 거예요? 네! 병력이나 물자나, 딱히 서두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언제나 기차를 이용해요. 여긴 터널의 주요 통로다 보니, 대역이 비교적 크거든요. ……대역요? 인터넷 속도 같은데 쓰는 말 아니에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정보 채널로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옮길 수 있느냐를 의미하니, 「대역」이란 표현이 맞지 않나요? ……어라,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와카 터널」이 지표면의 다른 장소를 연결시킬 수 있는 건, 바로 이 터널이 물질을 데이터화시키고, 다시 데이터를 물질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 이거 게니우스랑 같은 원리인데! 아, 당신들도 이 세계에 올 때 비슷한 기술을 썼나 봐요? 그럼 곧 하게 될 경험도 데자뷰처럼 느껴지겠네요! 우와! 기차역에서 완전 시대가 다른 게 느껴지네! 그야…… 이 벽은 유적 그 자체니까요. 고대인들은 자연을 숭배하기 위해, 여기에 신전을 지었어요——수천년이 지나도 우뚝 서있는 벽은 그들의 경건한 마음을 증명하고 있죠. 여하튼 병력 수송 차량으로 온 인원들은 전부 여기에 내려서, 터널 내부 전용 노선으로 갈아타야 해요. 다들 플랫폼에서 잠깐 기다리고 계셔요. 제가 이런저런 수속들을 처리하고 올테니. 아, 수고하세요! 기사는 육중한 동력 장갑에 탄 채, 검문소처럼 보이는 초소를 향해 달려갔다. 멀리서 추억 속에서나 들어봤을 만한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고위도의 시원한 가을바람이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를 스쳐감에, 비앙카는 아르한겔스크에서 보낸 며칠간의 시간을 떠올렸다.

Архангельск——라틴어로 Arkh-angel-sk, 「대천사의 도시」를 의미한다. 북극 지부의 책임자로 「미샤」라는 D급 발키리가 배치되었는데, 사무직이긴 하지만 혼자서도 지역 전체의 일을 원활히 처리했다.

미샤가 말하길, 만약 천명 기관이 그녀가 맡은 곳처럼 한가하다면, 만약 천명의 모든 발키리들이 그녀의 사무 작업처럼 붕괴수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세상은 분명 아름다울 거라고 하였다. 이는 모두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는 의미이니.

기차의 기적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새 병력과 물자들이 요새로 보내지는 듯하였다. 롤랑은 초소 밖으로 나와, 임시 신분증처럼 생긴 걸 손에 들고 흔들었다. 육중한 동력 장갑은 맡기고 나온듯하다——그 모습이 마치 미샤처럼 작고 귀여워 보였다. 비앙카는 그녀가 부르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이 세상이 평화로워지길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후우…… 계단을 너무 많이 내려와서 그런가, 무릎이 벌써 안 좋아질 것 같네. 근데——이게 다음에 탈 기차야? 뭐라 해야 하지…… 크기가 너무 귀여운데? 아하하, 실은 평범한 경량 채광용 차량을 개조해서 만든 거예요. 「와카 터널」 내부의 굴착에 드는 비용이 워낙에 커서, 이 노선은 최경량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었어요. 뭐, 여자한텐 딱 맞는 크기인 거 같은데, 아닌가요? 할아버지에겐 좀 불편하겠는데. 하하하, 저기 병사들을 보시게, 동력 장갑을 입고 그대로 타고 있지 않은가! 그들과 비교하면 난 그냥 고개만 좀 숙이면 되니. 근데 「여자한테 딱 맞는 크기」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여기서 키가 제일 큰 건 저인데요? 에취! 당신은 젊잖아요! 설마 매일 탐정 사무실에 앉아있느라, 허리가 할아버지처럼 됐나요? 왜 혼자만 감기에 걸렸는지 잘 알 것 같네요. 자,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 얼른 앉고 출발하세! 갈레세 전함에서 노를 젓던 기억이 떠오르는구나——이번엔 몸을 쓸 필요가 없지만, 하하하하! 오, 배에서 노를 저으셨다고요? 정말 남성 호르몬으로 가득한 곳이었겠네요! 극적인 긴장감이 넘칠 것 같은데, 정말 좋군요! 하하, 자네 말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동의한다네! 땀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니까! ……문호들의 취향은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네. 예술가의 생각이 이해하기 쉬워진다면, 예술의 깊이도 그만큼 얕아지지 않을까요? 흥…… 그렇게 봐주니까, 그냥 소변기 하나 뒤집어두고 작품이라 우기는 거 아니겠어?

주역:

『샘』(Fountain), 미국-프랑스 예술가로, 다다이즘의 대가인 앙리·로베르·마르셀·뒤샹(Henri-Robert-Marcel-Duchamp, 1887-1968)이 만든 작품이다. 그는 이 『샘』에 사용된 변기를 뉴욕의 118도로 5번 거리 J·L· Mott 공방 철물점에서 구매해, 「샘」이란 이름을 붙이고, 「R.Mutt 1917」이라 서명하였다.

뭐어? 그런 아방가르드한 작품이 거기에도 있었어? 난 「고도를 기다리며」가 최고로 황당한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흐으…… 세상이 이런 사람들로 가득하니, 붕괴능도 넘쳐나는 거 아냐? 에이, 그냥 농담이야. 너무 소심해하진 말라고, 아가씨. 인류 사회는 다양성이 있기에 의미 있는 거니까! 만약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도 이런 심미안이 있었다면, 우리가 에너지 장벽 문제로 나설 필요도 없었겠지! 비앙카가 컬처 쇼크에 빠져 있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타이밍에, 기차의 종소리가 「댕댕댕」하며 울렸다. 일행은 롤랑의 안내를 따라 서둘러 줄지어 들어갔다——곧이어 울리는 엔진의 굉음에 사람들의 얘기 소리는 완전히 묻혀버렸다. 창밖으로 시멘트 벽이 빠르게 지나가며, 기차는 더욱더 어두운 곳으로 나아간다. 비앙카가 「별로 다를 게 없네」라고 생각한 순간——
——창밖의 기묘한 광선이 처음으로 이 기차에 탄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우와! 저게 바로 세상의 「책등」이야? 예쁘다…… 그쵸? 완전 은하 철도의 밤의 현실 버전이라고요! 아…… 『은하 철도의 밤』이란 책 모르시나요? 원래 세계에서는 완성된 적이 없다던데……

주역:

『은하 철도의 밤』은 일본 작가 미야자와 겐지(1896-1933)가 써 1934년에 출판된 동화이다. 초고 단계일 때 작가가 죽었기에, 작품은 4가지 버전이 존재하며, 각각 상당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탐미주의적인 기묘한 아이디어가 담겨있어,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미야자와 겐지가 죽은 후, 그는 일본의 「국민 작가」로 추앙되어지고 있다.

음……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리타는 들어본 적 있어? 네, 은하 철도는 땅과 천국을 이어주는 영혼의 열차로…… 꿈속에서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그 열차를 타고 별하늘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예요. ……무지 슬픈 얘기인 것 같네. 동화는 언제나 슬픔의 무력감과 따뜻한 마음 사이를 섬세하게 저울질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이야기가 처음 쓰였을 때, 막 작가의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이런…… 갑자기 미안해지네. 그런 용기를 가지고 쓴 작품을 함부로 「슬픈 얘기」라 표현해선 안됐는데. 하하하하, 너희 발키리들은 너무 진지하게 사네. 원래 인생에 두 번 다시 찾아오는 여정은 없어. 그러니, 「일기일회」(一期一會)를 소중히 하는 거야말로 소중한 낭만이지! 「일기일회」? 「일생에 단 한 번」이라는 의미예요. 우리가 수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그땐 나나 상대방이 느낄 심경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있겠지. 하지만 딱히 이게 나쁜 건 아니야. 「낭만」이라는 단어의 가치는,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오니까! 「오,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인가요?」 ——그러니 내 연극을 보지 않은 이에겐, 이 대사의 절박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겠지.
……무슨 말인지 완전 모르겠어.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비앙카 님, 제 이름이 브린힐데나 오르트린데가 돼도, 저 리타는 언제나 비앙카 님의 충실한 메이드로 남아있을 테니까요. 야……! 다들 보는데 상관을 놀리면 어떡해?! 어머, 롤랑, 발키리들이랑 벌써 많이 친해진 것 같네요. 제 소개를 하죠. 저는 안나・찰스・다윈, 공화국 국방부 장관이자 이 요새의 지휘관을 맡고 있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마테차를 즐겨주시길.

주역:

마테차(yerba mate)카페인이 풍부한 남아메리카의 전통적인 허브차로, 예르바 마테 잎을 말린 걸로 만든다. 아르헨티나의 「국민차」로 유명하다.

——「지휘 센터」에 하차 후, 경비병들이 지키는 문을 몇 개 지나자, 비앙카 일행은 그들을 기다리던 국방장관, 다윈을 만날 수 있었다.


상대가 먼저 가볍게 소개를 마치자, 롤랑도 비앙카 일행의 신분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이런 관례적인 인사는, 질문하고 싶어 안달이 난 비앙카를 괴롭게 했다. 저기…… 당장 질문이 하고 싶은데. 언제든 가능해요. 어떤 질문인가요? 방금…… 성이 「다윈」이라 하셨죠? 그, 그 『종의 기원』을 쓴…… 아하하, 제 아버지 얘기를 하시는 건가요? 제가 원래 세계를 떠나기 전, 그 세상을 뒤집을 저서를 준비하고 계시긴 하셨죠. 기쁘네요. 그 책이 100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시점에 변화를 주었다니. 아…… 「따님」이시라고요? 그럼 당신이 읽은 『종의 기원』은, 다른 세계의 찰스 선생님이 쓰신 건가요? 아니에요. 제가 아는 한, 『종의 기원』을 성공적으로 출판하고, 결혼을 해 아이까지 가진 자는, 알려진 모든 세계 속에선 딱 한 명뿐이니까요. ……어라? 그, 그럼 당신도 유카탄의 「대사제」랑 비슷한 경우인가요? 양자의 바다에서 오랜 기간 데이터 상태로 떠돌다, 지금의 미래에 이르게 된? ……그게, 본질적으론 좀 다르긴 한데. 그럼…… 당신의 상황은 「세계마다 시간의 시점과 속도가 다르다」라는 전제가 없는 한, 설명이 불가능하지 않나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당신들이 만난 「뱀」처럼 불로불사가 된 것도 아니에요. 제 말이 모순되는 것처럼 들리는 이유는 바로—— ——저는 누군가의 죽음에서 태어난, 별을 얘기하는 자이니까요. 다른 사람의 복제품이라 해도 되겠죠. ……「죽음에서 태어난」? 「복제품」? 대체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진짜 「안나・찰스・다윈」은 병으로 10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전——그저 그녀가 양자의 바다에 남긴 잔상이 되겠죠. ……!? 오해하진 말아주세요, 제가 귀신이나 영체 같은 거라는 얘기는 아니니까요. 이건 그저 에테르 앵커의 「세계 복제」 능력이 「사람」에게 쓰여졌을 때 일어나는 일이에요. 문명의 업적이나 지적 생명체의 존재나, 이들 모두 「네겐트로피」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이죠. 「에테르 앵커」는 이런 「네겐트로피」를 「고정」하여 성장시키는 「배양기」라 생각하시면…… ……그리고 네겐트로피와 허수 내부 에너지——즉 붕괴 에너지는——서로 상반상생 관계에 있다는 것이에요. 이론상, 거꾸로 붕괴 에너지를 사용해 제어 가능한 방식으로 「네겐트로피」를 만드는 것도 분명 가능하다는 것이에요. ——이게 바로 「월광왕좌」의 기본 원리라는 것이에요. 훗, 역시 「네겐트로피」의 개념을 제안하신 슈뢰딩거 박사님이에요——전후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으시네요. 어…… 대체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 발키리 여러분, 다들 「제1율자」에 대해 어떤 걸 알고 있냐는 것이에요. 그 네겐트로피의 「맹주」 얘기인가요? 기계 장치, 성물, 심지어 신의 열쇠까지, 온갖 것들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막 복제해낼 수 있다던데. 네, 나쁘지 않은 요약이라는 것이에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막 복제한다」는 건 결코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는 체내에 축적된 붕괴에너지를 조작해, 역으로 「네겐트로피」로 바꿔 물건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에요. 일반적으로 말하면, 붕괴 에너지는 날뛰는 야생마처럼 제어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지만——율자인 그는 이런 상식을 벗어난 패를 마음껏 낼 수 있는 초능력자란 것이에요. 다윈 씨…… 당신의 에테르 앵커 또한 비슷한 힘을 가졌지만…… 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건 불가능 하다…… 지금 상황은 아마 이럴 거라는 것이에요. 어…… 정확히 말하자면 「에테르 앵커」엔 그렇게 자유자재로 뭔가를 다룰 능력이 전혀 없어요. 양자의 바다——즉 이 데이터의 바다에서——「에테르 앵커」가 「인양」할 수 있는 건, 자기 회복이 가능한 약간의 정보가 다예요. 두 발키리 분 모두 자신을 구성하는 물질이 데이터화되었다, 다시 물질화가 되는 과정을 겪었으셨을 거예요. ——이건 일종의 특수한 지향성을 가진 「인양」이라 할 수 있겠죠. 이러한 인양은 항상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기에, 두 분의 정신과 의지는 연속해서 이어지죠——그래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도 두 분은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아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미 사망한 「안나·찰스·다윈」의 모든 데이터는 「과거완료형」이죠. 에테르 앵커는 이 사라져가는 데이터를 우연히 읽고 재현한 것에 불과해요. ……이게, 제가 역사적인 인물의 복제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이유예요. 어쩌면 다른 세계엔 죽은 사람을 실제로 다시 살릴 수 있는 뭔가 복잡한 장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이 세상의 「앵커」에 그런 능력이 없다는 건 분명해요. …… 솔직하게 얘기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윈 씨. 이렇게 기밀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바로 알려주시는 걸 보니——공화국에 저희의 도움이 절실한가 보네요, 그렇죠? 하하하핫! 역시 7대양을 넘나드는 빨간 머리 선장이라 그런지, 바로 핵심부터 찌르네! 첫눈에 반할 뻔했잖아? 앗, 일로나, 이렇게 갑자기 와서 손님들한테 장난을 치면 어떡해! 흥흥, 안나는 국방부 장관이 돼도 이렇게나 소심하다니까. 나는 일로나・드라큘리스트, 제1근위군의 사령관이야——별명인 「드라큘라」라 불러줘도 좋아. 나는 옆의 「소심한」 미소녀랑은 달리, 「에테르 앵커」가 없어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별을 이야기하는 자이지—— ——그러니까 오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살아왔다는 거야! 어때, 「뱀파이어」라는 거, 대단하지 않아? 훗, 제가 쉽게 풀어드리죠. 「나는 500년이나 양자의 바다를 떠돌아다녔고, 이제 더 이상 내가 인간인지 괴물인지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지. 너희들도 딱히 문제없지?」 일로나, 이렇게 설명하면 되겠지? ……그래, 진작에 알았어야 했는데, 네년이 매번 내 완벽한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는 걸. 롤랑의 친구들, 다윈이 말주변이 좀 없어서 그런데, 얘기하기 어렵다거나 그렇지 않아? 어…… 제 생각엔 단도직입적이라 좋은데요? 적어도 비밀로 가득한 저희 주교보단 훨씬 나은데. ……물론 제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라, 이렇게 뒤에서 흉보는 건 좀 그렇긴 한데. ……다른 세계의 일은 접어두자는 것이에요. 「잉카 공화국」의 여러분——당신의 궁극적인 군사 목표는 지구 반대편의 제국을 무너뜨리는 것——이렇게 요약해도 된다는 것이에요? 어머,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슈뢰딩거 박사? 네 말이 맞아. 공화국의 존재 의의 자체가, 바로 그 「자연재해」에 대항하기 위해서니까. ……비록 요즘엔 좀 힘들어졌지만. 여하튼, 다시 핵심으로 화제를 돌리는 걸 보니——이미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 후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우선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질문부터 하고 싶다는 것이에요—— 바로 공화국에 「아이돌」 같은 직업이 있냐는 것이에요. ……하아? 대체 갑자기 그런 걸 왜—— ——아. ……무슨 일이야? 「아이돌」이랑 뭔가 특별한 관계라도 있어? 간단히 말해서, 저흰 오랜 세월 잊혀진 강력한 무기를 다시 조립하려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무기의 부품 중 하나가 어느 「아이돌」의 수중에 있을 수도 있어서. 하하하핫, 그거 농담이야, 진담이야? 비앙카 양, 성검 「듀란달」의 힘을 복원시키기 위한 보석들을 얘기하는 건가요? 맞아요. 란달이가 보석들의 행방을 몇 가지 이미지를 통해 알려줘서—— ——왔어! 비앙카 님, 여기 왔다고! 야! 갑자기 말을 끊으면 어떡해, 멍청아! 대체 뭐가 「왔다」라는 거야? 그야 당연히 황금색을 띤 「자유의 결정」이죠! 갑자기 근처에 나타난 게 느껴졌어요! 마치 시공간을 뛰어넘은 것처럼요! 뭐? ……아. 어쩌면 그 보석을 지닌 사람이 「와카 터널」을 이용했을 수도 있겠네요. 아까 원리가 「초공간 연결」 같은 거라 했죠? ——다윈 씨, 오늘 요새에 뭔가 특별한 일정이라도 있나요? 지금 이 시간대요? 한 시간 후에 위문 공연이 있긴 한데—— ——잠깐, 혹시 「그 스타 아가씨」가 당신들이 찾으려는 「보석을 지닌 아이돌」이라는 건가요?! 지금쯤이면…… 분명 막 요새에 도착해있겠네요! 「스타 아가씨」? ……혹시 그 사람, 하늘색 머리에, 긴 포니테일을 하고 있나요? 엄청 활기찬 성격 맞죠? 어머, 아는 사람이야? 아…… 아뇨, 어떻게 된 거냐면—— 좋아, 그럼 여기서 머뭇거려봐야 뭐해? 얼른 현장으로 가자! 공연 시작 전에 물어보는 게 좋지 않겠어? 서둘러! 작전 계획 같은 건 나중에 천천히 얘기해도 된다고! 아——미, 밀지 마세요! 알아서 간다고요!
아직 관객들이 들어오지 않은 탓인지, 요새 안 공연장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비앙카가 곧장 무대 뒤로 달려가려는 순간—— ——갑자기 울려 퍼지는 반주와 함께, 연예인처럼 보이는 귀여운 소녀가 무대 앞으로 나와 리허설을 하기 시작했다. 저의 목소리♬ 당신에게 닿고 있나요♪ 당신의 미소는♬ 마치 비온 뒤의 햇살 같죠♪ 천사가 이 세상에 내려오고♪ 무지개는 구름 사이에서 춤을 추죠♪ 상냥한 야수는 이리저리 날뛰고♬ 독장미는 거칠게 자라나요♬ 당신 덕분에♪ 전 운명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당신 덕분에♪ 전 용기를 가지려 노력하게 되었죠♬ 이미 하나로 엮인 영혼♬ 더 이상 헤어지지 않길 바라요♪ 손끝이 닿았던 추억이♬ 부디 앞으로도 아름답게 남아있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