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재앙」이라는 게, 「황제」가 「벽」을 가동한 사건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 그렇다네. 에너지 벽은 낡아빠진 질서를 모조리 쓸어버렸지——황제가 원하던 것이 바로 이거였어. 황제는 말했어, 선구자가 세운 「새로운 질서」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만들겠다고. 무슨 소리예요? 「새로운 질서」? 뭐? 내가 얘기 안 했나? ……아, 안 했던 것 같군. 아아, 이 나이가 되니, 그림책을 보더라도 여러 번을 봐야 겨우 이해한단 말이지. 방금 「새로운 질서」가 뭐냐고 물었지? 음…… 어디부터 말해야 하나…… 아무래도 이 세계의 역사부터 시작하는 게 맞겠군. 황제가 오기 전, 「이곳」의 유럽에는 「선지자」가 있었다. 선지자? 뭔가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선지자」인가요? 그래, 그런 종류의 「선지자」. 그를 따르는 이들은 예외 없이 뭔가 이상한 상태가 되었어. 오로지 집단을 위해서만 생각하고, 개인은 안중에도 없는. 아, 고귀한 숙녀분, 그대의 눈빛이 집단을 위하는 「헌신적인」 사람이 많은 게 뭐가 나쁘냐고 묻는 듯하군.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닐세. 「헌신」 자체는 잘못이 없어! 오히려 미덕이라 할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하나의 집단이, 세월이 흐르고 변해가는 세상에서,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정보가 범람하는데도, 항상 「헌신」하는 태도를 유지한다는 게——고귀하신 숙녀분,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걸, 그대도 잘 알 것이네. 「헌신」을 맑은 물이라 하면, 「이기심」은 먹물이 되겠지. 물이 탁해지지 않도록, 물방울이 모여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높은 곳에서부터 더러움을 씻어내리듯, 이상을 가진 조직은 모든 조직원이 이러한 물방울이 되도록 노력하길 요구해야만 했지. 기나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게 가능했던 건 손에 꼽을 정도였어——하지만 「선지자」는 기적이라도 일으킨 양, 온 대륙에 수많은 「열매」를 남겼다네. 황제는 여기에 뭔가가 있음을 알아채고, 그 방법을 찾으려 했지. ……얼른 말해 줘요, 그가 뭘 찾은 거죠? 고귀하신 아가씨, 그대는 정말로 성급하구나. 답은 간단하다네——선지자는 사람들의 타고난 본성을 바꿔버렸던 거야. 「타고난 본성을 바꿔버렸다」고요? 유전자 변형을 일으킨 건가요? 사람들이…… 군체 의식이라도 가지게 된 건가요? 흠, 그대가 말한 「유전자 변형」이나 「군체 의식」이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군…… 황제가 찾아낸 답은…… 그래, 그건 라틴어로 된 글귀였어. 선지자가 생전에 남긴 것이었지. 거기에 선지자는 이렇게 적어뒀어, 그가 얻은 건 「금단의 열매」에 담긴 지식이라고. 그리고 이 지식이 악용되지 않도록,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만 알려주고, 어떻게 했는지는 결코 알려주지 않았어. 선지자는 사람들의 본능에 다음 세 가지 원칙을 「각인」시켰어. 첫째, 개인은 집단에 피해를 주어선 안되고, 위험에 처한 전체를 방관해서도 안된다. 둘째,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개인은 다른 개인에 간섭해선 안된다. 셋째, 첫 번째 원칙과, 두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개인은 반드시 집단의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 이거, 뭔가 「로봇 3원칙」 같은데?

주:

로봇 3원칙은 아시모프가 그의 소설에서 소개한 로봇이 따라야 할 규칙이다——

1.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히거나, 위험에 처한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된다.

2.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0. 다른 모든 원칙을 우선하여,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가하거나, 인류가 피해를 받는 걸 방치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군인의 3원칙」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네요. 여기서의 집단이 인류 전체를 의미한다고 단정하긴 어려워요. 「집단」의 본질적인 의미는 「군대 그 자체」로 바꿔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황제에게 있어서, 이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이상적인 병사로 보였겠죠, 그렇죠? 정곡을 찌르는군, 고귀하신 숙녀분. 뛰어난 지휘관은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뛰어난 병사들 역시 자신의 지휘관의 사기를 높이지. 그땐 정말 좋았어, 모두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했지——허드슨·로와 그의 부하들이 저지른 위험한 일만 빼면. ……허드슨·로는 또 누구예요? 세인트헬레나의 수비를 책임졌던 영국인 장교였다네. 그와 그의 부하들은 황제의 힘을 노렸어—— ——황제! 황제가 여기에 있다! ……? 잠깐, 뭐라고요? 황제의 기운이 느껴진다! 여, 여기 누군가 황제와 관련이 있는 건가? 너희들이 황제를 찾아낸 것이냐? 아, 아냐, 황제가 배반자인 나를 잡으려 왔나? 아니, 그럴 리가, 황제가 그곳을 벗어났을 리가—— 좀 진정해요, 멍청한 용! ……! 맞아 맞아, 나이를 그만큼이나 먹었는데 호들갑이라니, 체통을 지켜야지. 이…… 이건 뭔가? 무슨 마귀나 요괴 같은 건가? 응? 날 말하는 거야? 에헴, 놀라진 마시라, 이 몸은 천상천하 유일의—— ——유일의 용광로에 처박히고 싶어서 안달이 난 시끄러운 무기에요. 좋아, 지금 얘기는 일단 여기까지 하고, 네 녀석이 여기에 온 걸 보니 다른 사람들도 다 깨어났단 거네?
아, 모두 굿 애프터눈! 우와——「낮잠」을 자고나니, 정말 개운하네! 오? 이건 뭐야? 새로운 애완동물이야? …… (이상하군…… 황제의 기운이…… 사라졌다?) ……선장, 정말 「개운해진 거」 맞아? 이쪽은 애완동물 같은 게 아니라, 「황제」의 전 부하인, 베르트랑 준장이야. ……황제? 그 「벽」을 세운? 우리의 목표인 그 「황제」? 맞아. 바로 그 「황제」. ——이 용의 말에 따르면, 그 「황제」의 이름은 「나폴레옹·보나파르트」라고 해. ……그, 그게 가능해요?! 박사…… 그 「보나파르트」랑 아는 사이인가? ——뭐 친척이라도 되는 건가? …… 잠깐만요, 지금 농담하시는 거예요? 그, 그 나폴레옹이라고요! 나폴레옹·보나파르트, 프랑스 제국의 첫 번째 황제이자 인류 역사상 위대한 전략가! 대도서관에서 읽어본 적 없어요? 아, 그러니까, 프랑스인들을 이끌어 대학살을 자행하고, 온 유럽을 불안에 떨게 만든 사람이란 거네. ……역시 선장도 결국은 잉글랜드 사람이군요. 음……어쨌든 카이사르랑 비슷한 사람이란 건가? 우리가 마주해야 할 상대가 이 정도 급의 영웅이라는 건가? ……아직 그렇다고 하긴 이르겠죠? 증거라 해봐야 여기 「베르트랑 준장」의 말이 전부니. 잠깐…… 「베르트랑」? 아니, 이 염치없는 여자가! 베르트랑의 말은 믿을게 못된다는 건가? ……아, 아니, 「믿을 게 못된다」가 아니라, 「다 믿을 순 없다」라는 거죠.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 아, 아뇨, 그런 의미에서 「다 믿을 순 없다」라는 게 아니라. ……그럼 대체 무슨 소리인가?! 베르트랑 씨, 저희에게 당신의 말은 이른바 「예증」입니다. 즉, 「나폴레옹·보나파르트」에 대한 정보에, 만약 당신의 기억에 잘못된 부분이 있거나, 말하는데 실수가 있어도, 우린 그걸 분별할 방법이 없어요. ——당신 말고는 그 정보에 대한 다른 출처가 없으니까요. 이 점은 인정하시나요? 나,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나 베르트랑 대령, 아니, 준장은——그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황제를 모셨단 말이다! 흠, 그래서요? 그래서? 뭐가 그래서냐? 수초랑 물벌레들이 날—— …… ……아, 신이시여, 망할 수초와 벌레들! ……그대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군. 나 스스로조차 내 기억이 맞는지 확신을 못하니. 하지만! 그 「벽」을 발견해 작동시킨 건 바로 황제라네! 이것만큼은 틀림없어! 흐음, 전설에도 그렇게 나와있긴 한데——거기선 「황제」가 누구인지 나와있지는 않아서.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황제」의 동기인데, 대체 「벽」은 그에게 있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거죠? 베르트랑 준장,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물론, 그건 제국엔 국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네. 게르만 장벽이나, 하드리아누스 방벽처럼. 아니, 황제에게 있어서의 「벽」은 로마인들에게 있어서의 「벽」보다 훨씬 훨씬 중요했어. 그는 그 「벽」을 정말 필요로 했어. ……무슨 뜻이죠? 나를 보시게. 겨우 숨이 붙어있는 이 짐승을 보시게. 「벽」 밖으로 떠난 후부터, 내 몸은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지 않게 되었지. 천벌받을 페르시아인 마녀! 그녀는 거짓말을 했어! 이 보라색 보석이 내 힘을 회복시켜줄 거라고!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꼼짝도 못 하게 된 나는 그저 「라이덴 병(Leyden Jar)」 취급을 당해, 얼마 남지도 않은 에너지까지 계속 짜내어졌지.

주:

라이덴 병(Leyden Jar)은 18세기에 고안된 정전기를 저장하는 장치로, 네덜란드인 van Musschenbroek가 처음 만들어 시험해 보았다. 원시적인 형태의 축전지였던 라이덴 병은 전기를 사용하는 실험에 전기 공급원으로써 쓰였다.

누구라도 좋다! 제발 이 망할 보석을 뽑아다오! 내 목 바로 뒤에 있다! 나도 정말 멍청했지, 내 에너지 원과 색깔이 비슷하다고 같은 것이라 믿다니! 응? 보석? 보라색? 내내내가 날아가서 볼게――
아! 이, 이건 내 「고귀」한 「지배의 결정」이잖아? 이게 왜 등에 붙어있는 거야? 이상한 마법 검이여, 이 보석이 그대의 것이란 말인가? 응! 얘기하면 길어질 테니, 일단 보석부터 빼줄게! 걱정 마시라, 이 보석이 있으면 에너지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거든——신경에서 일어나는 전기 신호까지 말이야——그러니까 전혀 아플 일은 없을 거야, 괜찮지? 좋아, 끝났어! 어때? 아프진 않았지? 아아, 곪은 종기를 짜낸 것처럼 정말 시원하구나! 하하하! 근데, 진짜 무모한 방법이네…… 뱀녀가 이렇게나 멍청한 방식으로 쓸 줄이야. 근데, 「지배의 결정」의 원래 용도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음…… 슈뢰딩거 박사라면 이렇게 예를 들 것 같은데—— 「맥스웰의 악마」, 들어본 적 있어? ……그건 뭐야, 일종의 붕괴수 같은 거야? 후훗, 비앙카 님, 「맥스웰의 악마」는 물리학자들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악마에요—— 이 악마는 입자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에너지가 퍼져나가는 것에 간섭함으로써, 에너지의 분포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죠. 흐음, 리타 씨의 답, 만점짜리 답변이야! 「지배의 결정」이 있으면, 나는 더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에너지를 조작할 수 있지! 감사합니다, 용 선생님!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절도 받으시죠! (쳇. 남한테는 오히려 예의 바르잖아.) (후훗, 비앙카 님을 좋아해서 그런 거일 거예요.) (야! 저런 놈이 좋아해 줘 봐야, 나만 더 곤란해진다고!) 흠흠, 그럼 이전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죠. 베르트랑 씨, 「황제」는 왜 「벽」이 그렇게나 필요했던 거죠? 설마 그 이유라는 게…… 그저 그 희귀한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 그 「인도인 미치광이」가 「황제」에게 마시게 한 그것과 같은 건가요? ——그건 「그저」라고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에너지는 황제에게 있어 정말로 중요했다! 세월이 흐르고, 황제의 힘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지——알다시피, 인도인 미치광이가 그 사태를 벌이기 전에, 황제는, 사람의 몸으로서는, 이미 그 끝에 도달하고 있었다. 모든 걸 순리대로 내버려 뒀다면, 「초월자」의 힘이 다할 때, 황제의 목숨도 끝을 맞이했겠지…… 그가 브리튼 땅에 세운 새로운 제국도 그와 함께 무너졌을 테고. 그래서, 그는 미치광이 인도인이 남긴, 복제하는 게 불가능했던, 이 미지의 물약을 주기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그 사이 불로장생을 원하던 옛 영국 장교가 이 약들을 훔치려 하는 사건이 발생했어. ——그래, 앞서 말한 허드슨·로의 얘기이다. 여하튼 이런 모든 것은 황제로 하여금 그 물약을 대체할 다른 에너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주었다. 게다가, 그 에너지원을 찾아낸다면, 그 힘을 백성들과 함께 나누는 것도 가능하니까. 흠, 그래…… 그 사이 황제는 「성가」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냈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간단히 말해, 황제는 그 「성가」에 담긴 힘을 깨우쳤을 뿐만 아니라, 그 「벽」을 세울 청사진 역시 얻었다. 괜찮아요, 하나씩 얘기해 보죠. 그 「성가」라는 건 뭔가요? 「성가」는 「선지자」가 만든 일종의 노래라네. 선조로부터 내려온 피에 각인된 「세례」를 일깨워, 세대가 지나도 「세례」의 효과가 사라지지 않게 해주지. 황제는 이 비밀을 발견하고, 그 힘을 사용해 수많은 부족과 집단으로 하여금 제국을 따르게 만들었다. 그 「세례」라는 게, 앞서 말씀하신 「3원칙」과 같은 건가요? 아, 그렇다네, 고귀하신 숙녀분. 첫째, 개인은 집단에 피해를 주어선 안되고, 위험에 처한 전체를 방관해서도 안된다. 둘째,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개인은 다른 개인에 간섭해선 안된다. 셋째, 첫 번째 원칙과, 두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개인은 반드시 집단의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 ——이러한 「본능」은 사람들의 피에 새겨졌고, 선지자와 인구의 이동으로 인해, 온 유럽 대륙으로 퍼져나갔지. 이에, 황제가 할 일은 그저 이 「타고난 국민」들을 제국으로 이끄는 걸로 충분했다. 「이국의 황제는 수하들을 데리고 길거리에서 위용을 과시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지.」 「그를 본 사람 중 절반이 자신도 모르게 처음부터 황제의 하수인으로 태어났기라도 한 마냥 그를 따르기 시작했어.」 「황제의 수하들은 먹지도, 마시지도, 잠을 자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황제를 둘러싸곤, 알 수 없는 언어로 노래를 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어.」 ——이 전설이 진짜라고요? 흠…… 뭐라고 해야 할지…… 너무 과장된 것 같은데……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변해? 아니, 그건 아니라네. 내가 장담하건대, 이 잉글랜드인——프랑스인의 황제는 결코 그런 주술 같은 건 부리지 않았다네! 그 전설은 너무나 터무니없어. 그때, 황제는 옛 부하들도 그 힘을 시험해 보길 바랐을 뿐이다. 인간의 힘이 「인류」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단지 그뿐이네. ……그건 무슨 의미예요? 그냥 자신이 가진 힘이 그 증거 아닌가요? 암스테르담에 상륙하기 전, 황제는 그의 물약을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자신 이외에도 힘을 얻을 수 있는 자가 있으리라 확신했어. 게다가, 더 이상 그 약들을 아낄 필요도 없었지. 그는 그 「벽」을 전개하는 것이, 약을 수많은 이들과 나눠가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 그 「벽」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어쩌면 어느 유적지에서…… 아…… 정말 황제를 배신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군. 그 전엔, 모든 것이 단순하고 아름다웠는데. 어쩌면 황제는 「선지자」의 기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혹은 황제의 계산에 오류가 있었거나.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 「벽」이 전개된 후, 수없이 많은 무고한 이들이 죽었다. 정말로 많은. 모두 황제를 따르는 이들이었다. 황제를 믿고 합류한지 얼마 안 된, 피에 「세례」가 각인된, 새로운 부하들이었다. ……황제 스스로도 이런 참사가 일어나리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 …… 이제와서 보면, 「선지자」가 사람들에게 내려준 「세례」는 변화의 과정을 버티기엔 역부족이었어. 물론 일부는 나처럼 살아남거나, 심지어 황제처럼 완벽한 변화를 이뤄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열 중 아홉은! 그 인도인 미치광이처럼 괴물이 되어버리거나, 에너지를 쐬자마자 잿가루로 변해버렸어! ……! ……정말 참혹하군요. 그래, 모든 게 참혹했지. 아직 지옥에 가보진 못했다만, 그때의 광경은 정말 지옥과 다를 게 없을 거라 느껴졌다…… 비명을 지르는 자, 비명은커녕 아무런 소리도 못내는 자, 울부짖는 자, 자기 동족을 뜯어먹고 있는 자, 불타올라 재가 되어버린 자, 완전히 산산조각 난 고깃덩이가 되어버린 자…… ……그리고 살아남은 열명 중 하나는, 이에 아랑곳 않은 채, 고통받는 이들을 그저 바닥에 진 얼룩을 닦아내듯, 말끔히 지워내버렸다. ——단지 먼 옛날부터 내려온 그 「세례」가 얼마나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가의 차이만으로! ……나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어. 더 이상 스스로에게 황제를 따르라고 납득시키는 게 불가능했다. 공포가 내 충성심을 압도하고 말았다! 내게 남은 본능은 그저 도망치는 것이었어! 얼마나 꼴사나웠을까! 용의 모습을 한 채! ……그래, 이건 「배신」만도 못해. 그저…… 그 참상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 난 도망쳤어! 그 누구보다도 충성심이 강한 베르트랑이 도망치고 말다니! 막 손에 넣은 「초월자」의 힘으로 겁쟁이처럼 도망치고 말았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오늘에 이르기까지, 황제는 분명 그 「벽」 안에, 냉혹하고 강대한 「초월자를 위한 국가」를 이뤄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이 치욕적인 베르트랑은 이렇게 「벽」 밖에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지. 겁쟁이 베르트랑!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는 걸 다른 이에게 알려주는 것조차——전혀 할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사악해 보이는 용과 마주하고 싶어 하질 않았으니까. 어느 누구도 이런 위험한 일을 이런 용과 논의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나를 본 이들 중 99%는 목숨이 걸린 듯 도망칠 뿐이었고, 나머지 1%는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해 날 죽이러 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키던 페르시아 마녀는 그 누구보다도 더했어! 이 늙은 베르트랑을 가둬, 바람 속의 촛불처럼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쥐어짜냈으니! …… 이만 끝내주시게, 여러분. 황제의 비밀을 이런 겁쟁이 혼자 간직해서는 안 됐었어…… ……당신들처럼 그 책임을 젊어질 수 있는 이들에게 전해줄 때가 됐어. 이리 오시게, 용감한 숙녀들! 황제에 맞서 싸우기 전에, 연습 삼아 그의 치욕스러운 부하부터 쓰러뜨려 보는 건 어떠한가! 이제 베르트랑 준장은 더 이상 원정을 떠날 수 없지만…… 여전히 베르트랑 대령은 여전히 전투 중에 죽길 갈망한다! ——오시게! 나를 죽여주시게! 내가 싸우다 죽을 수 있게 도와주게! ……저기요!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예요! 진짜 어이가 없네! ……제발 진정해 주세요, 베르트랑 씨! 크흠, 내 생각엔…… ……그렇게나 죽고 싶어 하는데, 그대로 이뤄줘도 괜찮지 않을까? 란달! 대체 뭔 헛소리야?! 아니, 비앙카 님, 헛소리가 아니라. 당신들 인류는 언젠가는 죽고 마니까——죽는 방법을 스스로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해서. 물론, 겁쟁이 씨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게, 영광스러운 전투 중에 죽음을 바라는 거라면…… 「삶」이라는 괴물에게 몇 라운드나 버티는지 지켜보면 어떻냐는 거지. ……「삶」? 맞아요, 「삶」.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두려운 괴물이죠, 아닌가요? 그 누구도 이것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질 못하죠. 진정한 영웅들도 이에 맞서 최선을 다해 즐기고 있으니까요. 당신 같은 노장들은 일반적으로 고집이 세니까…… 욕을 좀 해줄 필요가 있겠네. 크흠. 야! 이 노망든 놈아!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구닥다리! 아까 숙녀들 앞에서 당당하게 「출발의 노래」를 부르던 전사는 대체 어디로 갔냐? 「삶」은 여전히 너의 다음 수를 기다리고 있어! 세상에 아직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그, 그거야! (잠깐만, 비앙카 님, 나 아직 다 안 끝났는데——) (닥치고 내 말 좀 들어! 아니면 널 마을 사람들에게 넘겨줘서 땅 파는데나 쓰게 할 거야!) 베르트랑 장군님, 우린 앞으로 「황제」에 맞서 싸울 계획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그럴 수 없다는 건 우리도 잘 알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실은 당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으니까요! ……? 주변을 보세요, 이 이상하고 요란한, 오로지 「초월자」만을 믿고 받드는 나라를. 이웃나라 또한 미신을 따르고 있고 그저 걱정스럽기만 하죠. 만약 여기서 우리 초월자가 모두 「떠나버린다면」——그들은 어떻게 될까요? 베르트랑 장군님, 부디 여기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진정한 「초월자」로 이들을 이끌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은 「황제」나 「페르시아 마녀」보다 이 일에 더 맞는 사람이에요! 당신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게 다른 것보다 훨씬 중요해요! 당신의 선함은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에요——그러니 낭비하지 않도록 해요! …… 좋은 말이야, 발키리 양. 용 선생, 이곳 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하지 않아요. 그들은 그저 맹목적으로 당신을 숭배하겠죠——아마 편하게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웃기는군, 그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웠던 베르트랑은 황제를 배신했다는 말이다! 그게 어떻다는 건가요? 당신의 「황제」도 다른 이를 배신하지 않았나요? 그는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제국을 세우려 했어요——이를 위해 죽은 이들이, 전심전력으로 그를 지지했다곤 하지만, 이를 「영광스러운 희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를 위해 「황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배신해 왔을까요? 당신이 그를 「배신」했다고 한들, 과연 그가 신경이라도 쓸까요? 그건…… 그래, 황제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지. 구체적으로 누가 배신을 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 …… 너희들이 이겼다! 인정하마, 난 내 문제도 스스로 해결 못하는 바보라는 것을! ——아! 이 망할 수초와 물벌레들! 이 머리 좀 봐! 방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하하, 아무렴 어때요? 흔히 나이 든 분들이 더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는데——지금이 딱 그러려나? 괜찮아요, 그냥 즐겨요! 안 좋은 일은 그냥 잊어버리자고요! 자, 그럼 사람들에게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리타. 무슨 일이신가요, 비앙카 님?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으신가요? ……이렇게 분위기에 휩쓸려도 괜찮으려나? 갑자기 막중한 일을 이런 노인네에게 떠넘겨 버렸으니. 후훗, 비앙카님은 정말 착하시네요. ——급조한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이보다 나은 방법도 딱히 없을 거예요. 정말? 적어도 이 새로운 일이 그의 과거와 부정적인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여기서 다시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도 있겠죠. 게다가 사람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데, 좋은 일자리만 한 건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가장 오래된 초월자, 「용 장군」 베르트랑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성대히 구기 대회를 열겠습니다! 홍팀과 청팀의 대결! 누구나 참가할 수 있어요! 만세! 나콤님 만세! 어둠 속을 밝히는 횃불처럼, 아이들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어 주세요! ……조금 늦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야? 왜 이리 시끄럽지. 어라, 방금 못 들었어? 「용 장군」을 축하하기 위해, 선장이 도시 모두가 공놀이에 참여하도록 선동하고 있어. 공놀이? 축구는 아는데, 여기서 하는 「공놀이」는 대체 뭐야? 피찰이라 불리는 중앙아메리카의 구기에요. 대도서관의 정보에 따르면,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라네요.

주:

「피찰」(마야어: pitz, 나우아틀어: ōllamalīztli)은 중앙아메리카에서 기원을 두는 스포츠로 3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긴 역사를 가졌기에,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두 명, 혹은 두 개의 팀이 겨루는 경기이다.

고대의 피찰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공은 태양을 상징하여, 공식적인 경기는 하늘의 신과 지상 세계의 지배자들과의 분쟁으로 여겨졌다. 경기가 끝나면(공식적인 경기의 경우), 진 팀의 주장은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 뽑혀 제물로 바쳐졌고, 그의 두개골은 새로운 공의 중심 재료로 쓰였다. (당시의 공은 단단한 고무로 만들어졌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두 팀이 번갈아가며 공을 차, 공이 정해진 경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단, 팔꿈치와, 무릎, 허리, 엉덩이만이 공에 닿을 수 있죠. 으…… 이상한 스포츠네…… 그리고, 추가 규칙이 있죠. 공을 상대방의 돌 고리에 통과시키면, 즉시 경기에서 승리합니다. 이 경우, 공이 경계를 벗어나거나, 반칙 등으로 계산된 점수는 상관없게 되죠. ——물론, 이렇게 이기기는 정말 정말 어렵지만요. ……오? 일격 필살이라는 거야? 그건 좀 재밌겠네.
아, 탐정 씨——아까 말한 돌 고리가, 저 벽에 있는 거예요? 네, 저거예요. 보시다시피, 벽 높은 곳에 걸려있고, 안쪽 원의 지름도 공의 지름과 큰 차이가 없죠. 흐흠, 발키리에게 불가능이란 없다고요! 저도 선장한테 참가 신청하러 가야겠어요! 전설의 일격 필살——두고 보세요! 후훗, 그럼 저는 비앙카 님의 상대가 되어드리도록 하죠. 오호? 리타, 정말 나를 상대하려는 거야? 좋아, 이렇게 나와야 진정한 발키리지! 좋아, 아주 좋아! 잘했어!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 거지! 아니에요, 비앙카 님…… 저는 그저 상대편에 발키리가 없으면, 경기가 너무 한쪽으로만 쏠릴까 봐…… ……뭐야, 재미없게. 그래도 그런 이유라면——경기장에선, 봐주기 없기다? 알겠지, 리타 부관? 물론이에요. 비앙카 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그거면 충분해. 그럼, 얼른 참가 신청하러 가자! 그럼 곧 홍청 대전 특별 구기 시합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앗! 홍측 대표팀——「일격 필살」! 주장: 발키리, 비앙카·아타지나! 비앙카 님! 당신에게 올인했어요! 파이팅!! 청측 대표팀——「삼가봐주지말란명령을받들기에방심하신다면비앙카님이패배할수도있을것입니다」! 주장: 발키리, 리타·로스바이세! 리타 님 만세! 저쪽에 돈을 건 놈들, 다 거지로 만들어주세요! 흐흠, 다들 정말 열정적이군요! 선수들도 다 준비되셨겠죠? 그럼, 지금부터—— ——경기를 시작합니다! 오오오, 킥오프 시작과 함께 곧바로 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와! 멋지네요! 비앙카 선수가 팔꿈치로 공을 받아 앞으로 보냈지만, 리타 선수가 헤딩으로 다시 뒤로 보내버렸습니다! 홍팀 공을 살리는데 실패하네요, 청팀 득점합니다! 1:0! 세상에! 홍팀 곧바로 반격하네요! 비앙카 선수가 찬 서브가 곧바로 득점으로 이어집니다! 1:1! 경기가 점점 치열해져가네요…… 양 팀 모두 추가 득점이 없는 와중에…… 어라? 실수인가요? 비앙카 선수가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공에 힘이 너무 들어간 나머지, 관중석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1:2, 청팀이 다시 앞서기 시작합니다! 이런! 홍팀의 계속되는 실수! 이전의 실수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홍팀의 수비가 공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이 그대로 선을 넘어가고 마네요! 1:3! 홍팀, 이에 질세라 전진 패스를 연달아 합니다! 고리를 노리려는 건가요? 아! 청팀의 역습으로 공이 다시 홍팀 후방으로 넘어갑니다! 가까스로 막나요…… 잘못된 부위로 공을 막았군요! 홍팀의 반칙! 1:4! 현재 청팀이 4:1로 앞서가고 있습니다! 한 점만 더 따내면 경기에서 이기게 됩니다! 홍팀은 압박이 상당하겠네요! 홍팀 선수들이 뭔가 신호를 주고받는 걸 보니, 뭔가 작전이 있어 보이는군요…… 그럼 킥오프! 홍팀, 절박한 나머지, 전원 공격에 나섭니다! 청팀은 침착하게 대응하는군요. 혼란 없이 진형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와!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공이 하늘 높이 날아갑니다! 비앙카 선수, 모두가 앞으로 나와있는 틈을 타 측면에서 무릎으로 발리슛을 날렸습니다! 공이 고리를 통과합니다! 공이 고리를 통과했습니다! 홍팀 1:4라는 불리한 상황에서 역전을 이뤄냅니다! 홍팀 승리! 홍팀 승리! 팀 이름 그대로, 「일격 필살」을 보여주는군요! 홍팀에게 축하드립니다! 비앙카에게도 축하를! 오늘 경기의 최고의 골이었습니다! 홍청 대전의 특별 시합에서 홍팀이 승점을 가져갑니다! 양쪽의 총 점수는 14:12, 홍팀이 계속해서 앞서갑니다! 리타, 정말 대단한 게임이었어! 우리도 거의 질 뻔했네! 네, 정말 놀라운 슛이었습니다. 관객들도 모두 열정적이네! 정말 최고야!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 방금 자신들의 군주를 잃지 않았나? 근데 지금은 이렇게나 축하하며 즐기고 있다니! 그들의 충성심은 그저 허울에 불과했단 말인가? ——「문화 차이」 아닐까요? 그리고, 전 솔직히 오히려 더 부럽네요. ……부럽다고? 네, 이들에게 있어 통치자는 그저 상징적인 존재일 뿐이니——높으신 분들께 무슨 일이 생기든, 자신의 기분이나 삶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니까요. 좋은 일 아닌가요? 통치자가 자신의 일상을 간섭할 일이 없다는 게. 그 페르시아인은 나쁜 면도 있지만——이 점만 놓고 보면, 흔치않은 훌륭한 군주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이 곳의 사람들은 시스템을 숭배하죠, 통치자가 아닌——그들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시스템이 없거나 신뢰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그러니, 「대사제」가 「용 장군」이 되어도, 이 사회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이어지겠죠. 여하튼, 이런 자잘한 규범 등의 차이는 접어두고——신의 이름의 첫 글자가 J 인지, A 인지, 이런 게 그렇게나 중요할까요? 그건……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 「용 장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