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너……설마 편지의……. 그래. 내가 「광대 α」라네. 하지만……이렇게 만났으니, 「제대로」 자기소개를 해야겠지. 나는 「오토 아포칼립스」. 현 천명 주교지. 이봐, 계속 선채로만 있지 말라고. 일단 안에서 몸을 데우는 게 어떤가? 오토……아포칼립스? 하하하, 그렇지. 만약, 거짓말이라면 날 때려도 괜찮다네. 오토 아포칼립스. 기관에서는 어느 누구도, 내 이름을 입에 올리진 않지만……하하하. (H.A가 혼강에 남긴 기록에서 이야기했던, 그 인물이……?) (아니, 하지만……100년도 넘게 옛날 사람이잖아?) (그렇다면……2세, 3세란 건가?) (게다가 이 사람, 꽤 젊어……) ……분명, 좋지 않은 소문을 들어서겠지? 내 소문은 그런 것들 뿐이지. 물론 진짜도 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같은 소문도 있어.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네. 오늘은, 주교로서 만나러 온 게 아니거든―― ――속을 터놓고 말하려는데, 펜네임을 사용하면 서먹하지 않겠는가? ……. 그래서, 무슨 일인 거야? 「아아, 친애하는 벗이여, 긴장할 것 없네」 ……하하, 방금은 극작가 같은 말투를 안 쓰는 게 나았으려나. 분명하게 목적을 알려주면, 너의 긴장도 다소 풀릴 거라 생각했는데―― 「웰트」, 네가, 오토 아포칼립스의 후계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즉, 내가 물러난 후, 천명의 다음 주교가 되도록 너를 키우려고 한다. 어떤가? 뭣……. 뭔, 소릴 하는 거야? 아아……. 너무 노골적인 제안이다 보니, 역시 놀라게 해버렸군. 그렇지만 ……「아포칼립스」 가문은, 혈연에 전혀 구애되지 않는 일족이다.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있는 사람들을 언제나 받아들이고 있지. 그러니까 만약, 네가 바라기만 한다면……지금 당장이라도 일족으로서 아포칼립스 성을 받아, 나의 형제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뭐……? ……진심이야? 초면에 이런 걸 부탁하면,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할 테지. 단지, 내 입장에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아포칼립스 가문의 가주로서, 너를 계속 관찰해왔다. 넌, 나와는 정반대다. 분명 진정 위대한 지도자가 될테지. ……너하고, 정반대? 무슨 의미야? 하하하하, 역시 너의 시점은 남들과 달라 재미있어. 솔직하게 말해, 나는 스스로가 주교로서 낙제점이라 생각하고 있다네. 내가 주교가 된 건, 오로지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니까――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네. 지금, 중요한 것은……정말로 「위대한 천부(天賦)」를 가진 후계자가 필요하다는 것뿐이라네. ……내가? 위대한 천부? 그래. 위대한 천부다. 천부라는 것은 아직 개화되지 않은 재능──그러니까, 지금은 자신을 특징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괜찮다네. 그럼, 질문을 받아줬으면 하네. 이 2년간, 많은 책을 읽었잖나―― ――그렇다면, 인류 수천 년의 문명에서, 어떤 인물이 「위대」하다고 불릴 만한지, 자네의 생각을 알려줬으면 한다네. ……. 길게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으니까, 생각난 것을 말해주게. 펜팔 친구끼리의 잡담이야, 정답도 오답도 없지. ……. 많은 책을 읽었다는 건 말이 지나쳐. 하지만,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알고 싶다면, 몇 명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대는 것 정도라면, 대답할 수 있어.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던 건, 단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은 어때? 하하하. 그건 그녀가 남을 풍자하려고 한 말이지 않은가? 뉴턴의 수학에 대한 통찰력은, 확실히 누구도 이길 수 없었지……. 다만, 만물에 통달한 「위대」로 얘기하자면, 그녀는 셰익스피어에겐 미치지 못 한다고 생각한다네. ……. 셰익스피어라. 「사느냐, 죽느냐」, 이런 작품을 쓴 작가님이어야 위대한 거야? 하하하……그녀는 단지 세상 속의 괴로움들을 나란히 엮어, 사람들에게 보였을 뿐이야. 사물을 보는 눈은 확실히 남들과 달랐지만, 동정심은 일말의 단편도 가지고 있지 않은 녀석이었지. ……. 네 논리로 본다면, 이론가는 자신의 영역에 갇혀있고, 창작자는 여러 갈등을 묘사하는 데만 뛰어난 나머지 얼음같이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라는 건가. 그럼, 사람에게 선을 권하는 종교적 지도자는……예를 들면 석가모니는 어때? 후우……이래저래 말하다 보니, 결국 우리 아포칼립스 일족의 선조에 이르렀네. 서, 선조라고? 그래……다만, 그 경위를 말하려면, 3일 밤낮이 걸려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지. CG15-14.jpg 결론부터 말하자면……이상은 있었지만, 그걸 해낼 능력이 따르지 못했다, 멀리 볼 수 있었지만, 등잔 밑은 어두웠다――그런 인물을 위대하다 할 수 없지, 그렇지 않은가. ……네 기준, 엄청나게 높네. 그럼 견실하고, 마음으로부터 세계를 생각한――현대 러시아의 아버지, 표트르 1세는 어때? 표트르는 분명 충분한 인물이지……만, 억울한 사람을 죽인 것은 그 황제의 오점이지. 정말로 위대한 인물이라면, 불필요한 피를 흘리게 두진 않았을 걸세. ……. 그럼, 의료나 위생제도를 개혁하고, 무수한 목숨을 구한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은? 그녀에겐 위대한 소질이 있었지……하지만, 평생 의료에만 종사해서, 그 소질의 성장에 방해가 됐어. ……. 그 외에도 애덤 스미스나 다윈,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를 생각해 봤는데……. 하지만, 너의 그 높은 기준이면, 누구도 「정말 위대한 인물」은 아니겠지? 그렇지. 그녀들은 모두 현명하고,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커다란 도약을 이뤄냈다네……. 하지만, 그 이외의 분야에서, 그 혁신적인 사상을 실천할 힘은 지니지 못했지. ……그녀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내가 할 수 있다, 넌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물론, 보증은 할 수 없네. 지력으로 보면, 자네는 분명 그녀들에게 미치지 못 해. 하지만, 자네는 그녀들 누구도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지. 그녀들 누구도……가지지 못한 것? 그래……. 요 최근, 자신이 어떤 인간들과 함께했는지 생각해 보게. 아인슈타인은, 역사상 가장 지능이 높은 인물. 테슬라는, 사상 최강의 파괴력을 지닌 발명가. 플랑크는, 당대의 누구보다도 파격적인 물리학자. 브리간티아는, 천명 기관의 최강 발키리. 아, 그리고 오늘 처음 만난 「선인」 후카. 모두들, 자네에게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지, 그렇지 않은가? 아, 아아……그, 그런가……. 하핫……. 정말이지, 자신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했나 보군. 그래, 이렇게 말하면 되려나……. 우리들 중에서, 그 5명 전원과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한 건……. 자네뿐이라네. 어……? 모르겠는가? 진정한 위인이란, 어느 한 분야에 걸출한 인물 같은 게 아닌……. 이렇게 걸출한 인물들과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고, 그들이 가진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키는 것이 가능한 존재다. 그리고 자네는, 내가 아는 한, 그런 위대한 존재에 가장 가깝지. 다른 이를 성장시키는 데에 뛰어난 사람이란 거네. ……. 나같은 인간은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하는 거 아냐? 아하하……내가 육식 중의 육식이라면, 자네는 초식 중의 초식이군!

주:

육식(계)이란 사회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데 열심이며, 명예나 이익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감정에도 빠져드는 류의 사람들을 말한다.

초식(계)은 내성적이고, 절약생활을 선호하며, 야심도 없이, 세상에 무관심하고, 평온하게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초식……? 육식……? 아니 아니……이런 비유, 몰라도 상관없네.
요컨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간의 내재적 요소란 어떠한 성격이나 기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내재된 건, 무엇보다도 온톨로지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이네.

주:

존재론(온톨로지: Ontology)이란 형이상학(Metaphysics)에서 파생된 기초적인 이론으로 존재 자체, 즉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본질적인 특징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정보과학 분야에서, 「온톨로지」는 특히 「형식화된, 공유 개념 체계에 대한 명확하고 상세한 설명」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서적 한 권의 판본 정보는 도서 검색 시스템 안에서 이 서적의 「온톨로지」로 간주된다.

온톨로지? 온톨로지라 했지만 뭔가 신비주의적인 얘기는 아니라네. 나는, 이미 500년도 넘게 살고 있지만……그런 나의 온톨로지는 결국, 「성녀」라고 불리는 사람의 막연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5, 500년이라고? 딱히 놀랄 것 없어……악마와 계약했다 같은 거라네. 그리고 자네라면……그런 계약 따위 애당초 필요도 없을 것이고. 그……그건 즉……. 그렇다네, 자네는 나 같은 것보다 훨씬 쉽게, 500년의 수명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거지. 단, 오늘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네의 온톨로지는――올바른 인도가 있으면――나의 100배나 강해질 수 있다는 거야. 내가? 너보다? 그래. 자네야말로. 나보다도 더 강해질 수 있어. 자각하지 못 했나? 자네의 온톨로지는……어느 한 인간의 이상향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이상향이라네. ……온톨로지……인류 "전체"? 「우리가 인류를 위해 무엇보다도 많은 걸 헌신할 수 있는 직업을 골랐을 때」 「어떠한 무거운 짐도 우리를 굴복 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짐은 만인을 위한 희생이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들은 어떠한 비참한, 얕고 이기적인 기쁨을 향유하는 일 없이」 「우리의 행복은 만인에게 속하며」 「우리가 이뤄온 일은 소리 없이, 영원히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며 계속 존재하고」 「우리의 유해는, 고귀한 사람들의 뜨거운 눈물에 적셔질 것이다.」

주:

『직업 선택에 대한 한 젊은이의 고찰』의 마지막 구절.

작가는 “칼 마르크스”라는 17세의 소년, 그는 평생을 두고 이 "중2병"과 같은 신념의 실천에 힘쓰게 된다.

――어떠한가, 자네는, 이런 기개 넘치는 말을 하는 인물이 부럽다고 생각한 적 없나? 몇 번이고 윤회를 반복하든, 자신은 언제나 「정의의 편」으로 있길 바라본 적 없나? ……. 아아……세계대전이 끝난지 벌써 10년이나 됐는데……. 런던 교외의 전력 공급은 아직도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지 않은가? …….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주인에게 불이 될만한 것을 빌려오지. ……필요없어. ……응? 만약, 네가 정말로 뭔가를 나에게 부탁하고 싶다면……. 자기 얘기만 하는 건 그만둬. 당신,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교 씨. ……. 뭔가……틀린 말이라도 했던가? ……. 아니, 너는 딱히 틀린 말을 하지 않았어. 단지,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여기서, 너를 믿지 못하겠단 거야. ……. 그런가. 그러면……시간이 자네에게 답을 내주기를 기도하지. ……. 그럼. ……. 다음에 보세, 친구여. (……웰트 님, 잠깐만요.)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