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단테의 『신곡』
……
「웰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남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웰트의 기억상, 갑자기 이유도 없이 자신에게 자유를 주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웰트의 「기억」부터 그다지 긴 것도 아니지만.
3년 전의 같은 계절, 그는 혼돈 속에서 눈을 떴다. 낯선 사람들이 그를 천천히 관찰하며, 길을 잃은 아이에게나 할 질문들을 많이도 물어왔다.
「이름은?」
「전에는 어디에서 살았지?」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
정말로 기묘한 감각이었다. ──분명 답을 알 텐데, 머릿속에서 그것들을 「조립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마치 기억을 구성하는 신경이 전부 타버린 듯했다.
「모르겠어요」
그것이 청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였다.
말을 하는 건 가능했다. ──이걸 기뻐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독일어, 영어, 러시아어, 라틴어……심지어 일본어와 중국어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자신이 이렇게 많은 언어를 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나는 누구지?」
자연스레, 그는 그 의문을 입으로 냈다.
「우리도 모른다」
상대는 그렇게 답했다. 거기서부터 거침없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천명. 그것은 오랜 역사를 가진 비밀 기관. 세계의 거의 모든 곳의 지배자이며, 인류의 구세주다.
붕괴. 그것은 과학적으로는 아직 설명할 수 없는 재해. 인류 문명이 생겨난 이후, 붕괴는 끊임없이 인류 사회를 공격하고, 무해한 생물을 무서운 괴물로 바꾼다. 「붕괴수」라고 불리는 괴물은 플라스틱 같은 기이한 피부를 가지고,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나. 기억을 잃은 어떤 붕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장소는 베를린의, 어느 낯선 빌딩.
몸. 그 생존자의 몸에 숨겨진 커다란 비밀──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천명이 준비한 인체실험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다.
1달. 또 1달. 또 1달이 지났다.
1년. 또 1년. 또 1년이 지났다.
「Ω1」이라 번호가 붙여진 청년은 실험실을 전전하면서, 같은 일을 계속해서 겪어왔다.
청년에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계속해서 가해졌다.
「우리에게 협력해야 한다」
「인류를 위해서라 생각해라」
「이건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이다」
미친 과학자 놈들. 인류를 구한다니, 거짓말일게 뻔하다.
나는 생존자 아닌가? 재해에서 겨우 살아남았는데 왜 또 불행한 꼴을 겪는 거지?
너희가 입을 모아 강조하는 「인류」란 대체 뭐야?
정말로 죽으려고 생각한 적도 있다.
……
나를 걱정해준 시끄러운 녀석이 없었다면
Ω:
10월이군. 이르지만, 이것으로 네게 보낸 편지도 22통이 됐어──성녀의 이야기는 지난번에 끝냈으니, 새로운 화제를 찾기 전에,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지.
9월에 일어났던 참혹한 사고에 대해 들었어, 그들을 대신하여 사과하고 싶다네. 마침 다른 실험실이 네 협력을 희망하고 있으니까, 너는 이제 곧 새로운 장소로 가게 될 거야. 거기는 지금까지의 어떤 실험실보다도 더 좋은 환경일지도 몰라──새로운 책임자는 온건한 성격의 여성이라고 들었다네.
다만 천명을 대변해서, 나는 자네가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네. 자네가 받은 실험은 모두, 이 별에 있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족을 존속시키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고난이었어. 세상은 때때로 누군가에게 특히나 불공평하지만, 이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네.
베를린의 재해로부터 벌써 3년이 지났군. 시내는 이미 재건되기 시작하고 있어. 그날 밤의 공포도, 사람들은 곧 잊어버리게 되겠지.
하지만, 이 사악한 힘이 시시각각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그것은 자네를 피해 갔지만, 다른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어. 만약 그것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면, 「호모 사피엔스」는 진정한 의미에서 지혜의 힘으로 이 자연계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을 거라네.
그렇게 되면 두려워하며 지낼 필요도, 자신을 속이며 하루하루를 보낼 필요도 없어지겠지. 물론, 자네에게 있어선 불공평한 일이라네. 특히 최근에 연달아 일어난 사건은 정말 불공평하기 짝이 없지. 단지 나는, 자네가 이를 이해해 주고 모든 잘못을 용서해 줬으면 해. 전인류의 운명이, 어떤 의미에선 모든 것이 자네의 어깨에 짊어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P.S.
자네가 기억을 잃기 전까지의 경력에 대해서는 아직도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더군. 그렇다 해도, 이미 3년이란 세월이 지났어. 실마리를 찾을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지. 하지만, 나는 「붕괴의 아이」 같은 이야기는 믿지 않아. 자네는 율자가 아니야, 그렇지?
만약, 신기술이 발명되어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일어날지도 모르지만……그건 누구도 모를 일이지.
너의 친구
광대 α
1955.10.2
(전략)
……확실히, 만나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이런 얘기 해봐야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당신은 여기서, 새로운 인생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에 맹세코
리제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박사
1955.10.20
주:
트리에스테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 국경에 있는 도시. 한때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왕국의 주요한 항구로서 번영했다. 트리스티에는 트러플의 주요 산지인 프리울리 지구에 속해있어, 국제 이론 물리학 센터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테슬라는 크로아티아계 미국인으로, 트리스티에와 그녀의 고향은 기후가 비슷하다.
주:
J.R.R. 톨킨은 1954년 7월 29일에 영국에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의 첫 책 『반지 원정대』를 출판했다.
원래는 톨킨이 이미 다 써내린 『반지의 제왕』을 한 권에 모아서 출판할 예정이었지만, 전쟁 이후의 물자난, 종이 부족으로 실현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