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소의의 첫 기억은, 한 편의 푸른 빛이었다.
파란 바다가 소리를 높이며, 파도는 그녀의 발을 어루만졌다. 어린 진소의(秦素衣)는 해변에 서 있었다.
왠진 모르겠지만, 그 광경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진다.
머리 밑으론 부러운 모래와 하얀 파도. 머리 위론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가까운 곳에 누군가가 얘기를 하려는 듯,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진소의는 고개를 돌려보지 않았다.
샤아——
아——카—카——
기묘한 소리는 갈매기들을 놀래며, 그 깃털들이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스승은 뒤에서 다가와, 그녀를 안은 채 돌아갔다.
스승의 소매는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 품 안은 정말 따뜻했다.
그 사람의 품속에 있으면,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그보다 전의 일을, 진소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 해, 정위진인(精衛眞人)은 동쪽 바다에서 이도(璃島)의 괴수를 쓰러뜨렸다.
그 해, 8살이었던 진소의는 태허산, 정위진인의 일곱 번째 제자가 되었다.
첫째 제자 임조우(林朝雨)는, 처음 오는 곳이라 불안해하는 진소의의 곁에서, 그녀를 대신해 방을 청소하고, 생활용품들을 챙겨주었다.
처음 진소의는 말하는 법도 잊어버렸으나, 임조우는 한마디 한마디씩 말을 붙여주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아직 철이 들지 않았을 때, 그 무엇보다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수년 후,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절망에 빠졌던 시기에도 종종 기억하곤 했다.
임조우는 그녀와 삼 일간 함께한 후, 여섯 번째 제자인 마언경 돌보러 돌아가야 한다며 말을 꺼냈다.
태허검파의 제자는 입문한 시기에 따라 순번이 정해졌다. 진소의는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제자였지만, 가장 어린 제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다섯 번째 제자와 동갑으로, 여섯 번째 제자보다는 세 살 위였다.
여섯 번째 제자에 대해선 그녀도 알고 있다. 스승이 그녀를 산에 데려왔을 때, 6명의 제자——여자 다섯과 남자 하나가 마중을 나왔다. 첫째 제자의 나이는 스승과 비슷해 보였다. 그녀의 팔 곁에는 당황한 표정을 한 아이가 있었다.
진소의는 호기심에 그 아이를 몇 번이고 쳐다봤지만,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옆에는 같은 얼굴을 가진 여자아이 둘이 나란히 있었다. 한쪽은 진소의를 관찰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은 옆을 보며 무언가로부터 숨으려는듯하였다.
그 왼쪽에는, 빨간 머리의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설탕이 묻은 과일을 입에 넣은 채, 진소의를 향해 한쪽 눈을 잠시 감았다. 예쁜 미소였다.
오른쪽을 보니, 모두의 뒤에 서있는 소녀가 보였다. 그녀는 금색의 검을 든 채,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흘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지만, 첫째 제자는 아직 돌아가지 못했다.
몸이 약한 탓인지, 환경이 맞지 않았던 건지, 진소의는 병에 걸렸다. 처음엔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는 정도였지만, 그 후, 화상을 입을 듯 열이 나기 시작했다. 임조우는 진소의의 옷을 갈아입혀, 약을 먹이고, 밤을 새워가며 간병을 했다.
진소의도 전혀 잠들지 못했다. 고열의 탓인지 모든 게 흐릿해,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그녀는 어렴풋이, 빨간 머리의 소녀가 예쁘장한 남자애와 함께 문병을 온 걸 기억하고 있었다. 둘은 나쁜 기운을 없앤다고 하며, 그녀의 베개 밑에 둥그런 무언가를 놓고 간 것 같았지만, 일어나고 나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 쌍둥이 자매도 온 것 같았다. 한쪽은 첫째 제자 곁에서 수건을 갈아 주었다. 다른 하나는 그녀의 손을 쥔 채, 슬픈 듯 울고 있었다.
금색 검을 든, 무표정의 여자아이도 신경 쓰였지만, 그녀가 왔는지 안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음날 정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었다. 진소의는 열이 내려,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진소의가 몸을 일으켜 주변을 보니, 첫째 제자는 없고, 빨간 머리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온화한 첫째 제자와는 다르게, 경쾌한 발걸음으로 방에 들어와 진소의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품에서 사탕을 꺼냈다.
붉은 머리의 소녀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언가가 옷에 떨어진듯한 느낌이 났다.
진소의에게 있어, 누군가가 자신을 껴안아준건 이번이 두번째였다. 스승의 따뜻한 품과는 다르게, 소녀의 품은 차가웠다. 마치 모든 허무가 한 점에 모여있는 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