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예를 표하고, 그대로 등을 돌려 산을 내려갔다. 임조우는 제자의 모습이 돌계단 너머로 사라지기는 걸 지켜보다, 침묵하고 있는 소미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난 여전히 널 사매로 여기고 있긴 하지만, 내 태허검파에 참견을 허한 적은 없다.」 「제 잘못입니다.」 소미는 미소를 지은채 시선은 먼 곳을 향하게 했다. 그리곤, 이 작은 방 안을 훑어보았다. 「태허검파, 불운관…… 후후, 다 조우 사저 답군요.」 임조우는 차갑게 코웃음으로 답했다. 「뭐가 어떻든 태허일문을 이어나가야만 하니까. 내 손에서 끊어지게 둘 순 없어.」 「후우, 우리 일곱 중에, 조우 사저가 가장 옛날을 그리워하나 봅니다.」 두 사람은 잡담만을 이어가며, 본래 하려 했던 얘기는 아직도 들어가지 않았다. 임조우는 계속 참는 듯이 보였지만, 소미는 사사로운 일들에 흥미진진한 모습이었다. 「조우 사저의 제자는 그런데로 소질이 있습니다. 배짱도 있고. 단, 남자인게 아쉽습니다. 우리 망아지만큼 되긴 어렵겠죠.」 「……난 제자를 뽑을 때, 사부님처럼 재능을 중시하진 않아왔다. 게다가, 언경은 적수가 없을 정도로 무술에 재능이 있어. 남녀를 떠나서, 내 제자 그 누구도 언경에겐 비할 바 못해.」 「그래도, 침옥에겐 분명 소질이 있긴 해. 태허파는, 앞으로도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이 아이가 내가 받는 마지막 제자가 될 수도 있고.」 「조우 사저는 벌써부터 마지막 제자를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임조우는 약간 어이없어 하더니,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졌다. 정위의 일곱 제자 중, 그녀는 가장 연장자로, 두 번째 제자보다 15살 위였다.[\s] 임조우도 처음엔 신경쓰지 않았지만, 세월이 흐르니, 게다가 가장 나이가 어린 마비마(馬非馬)와 결혼하게 된 것으로, 더욱 나이를 의식하게 되었다. 「소미,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도 적당히 해라…… 하려던 얘기로 돌아가지.」 태허검파의 당문은 탐색전을 그만두었다. 「사부님이 부활하고, 사매 하나가 죽었다. 다음은 우리들 차례――넌 어떻게 할 생각이냐?[\s] 잡담이나 하러 오랜만에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지? 너…… 한 번 더, 사부님을 죽일 계획이냐?」 「……」 임조우는, 사매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소미, 네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예전엔 널 정말 친동생처럼 여겼다. 그러니 충고 하나 하지.」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 우리 일곱이 모일 일도 더 이상 없겠지. 그땐 운이 좋았을 뿐이다. 다시 한 번 해봐도, 같은 결과가 나올 거란 법은 없다.」 임조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미 20년이 흘렀지만, 그날 밤은 잊혀지지 않는다……

완여와 능상도, 거의 죽을 뻔했어. 혹시 네가 없었다면 언경의 얼굴의 그 검도…… 큰 화를 불러오고 말았겠지.」

「역시, 조우 사저는 옛 시절을 정말 그리워하시는 군요. 후후, 벌써 20년입니다. 『혹시』 같은 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소미는, 과거의 일엔 전혀 흥미가 없었다.

임조우도 그건 알고 있었지만,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흥, 그래, 말해보거라. 무슨 계획이 있냐?」 「제게 그런 것은 없습니다.」 무림계의 누구나 그 총명함을 인정하는, 『지계무쌍(知計無双)』이란 이명을 가진 소미임에도,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얼마나 생각을 짜내든, 완벽한 계획 같은 건 없지 않겠습니까? 계획대로라면, 사부님은 여전히 죽어있어야 할 테고, 이 세상에 다시 살아날 일은 없었겠죠……」 「그러니 계획 같은 건 세울 생각 없습니다. 변화는 언제나 생기고, 사람 마음은 헤아릴 수 없으니까요.」 임조우의 마음속에, 갑자기 차가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소미를 싫어한다 해도, 내심, 그녀에겐 뭔가 생각이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20년 전, 그녀가 일곱 제자를 모아, 천하무적의 진선(眞仙)인 정위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을 때 처럼. ――시간과 함께, 세상은 바뀌어갔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태허칠검도 예전과는 달라지고 말았다. 「그럼, 넌……」 「훗, 계획은 없지만, 방법은 많죠.」 임조우는 의심스러워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방법?」 「네.」

「20년 전, 우리들은 사부님을 묻고, 태허산을 태워버렸습니다.

그 후, 산에 돌아가 봤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죠.」

「사부님의 헌원검이 사라져 있더군요.」 소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임조우를 응시하는 그 눈엔, 더욱 깊은 의미가 있는듯했다. 「……사라졌다고?」 「……」 소미는 임조우의 얼굴을 지긋이 보더니, 갑자기 시선을 옮겼다. 「……조우 사저가 아니었나 봅니다.」 「뭐?」 소미는 뭔가 재밌는 게 생각났다는 듯,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제가 돌아갔을 때, 사부님의 관은 완전히 타버렸었죠. 관속의 뼈도 불타 눌어붙어, 형체조차 안 남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관의 위치를 정한 건 저였죠. 그 위치라면 불길이 이르진 못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현장을 조사했던 겁니다. 그러니, 역시나――」 「관 속의 유해는 사부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뭐라고?」 「…………」

「그러니까…… 넌 한참이나 오래전부터, 사부님이 살아있다는 걸 알았던 거냐? 너…… 20년 전에도 알고 있었어?

그럼에도, 알리지 않았다니…… 아무 말도 없이, 입 닫고 있었다는 건……」

「……」

「몰랐어. 전혀 몰랐다고…… 언경은? 언경도 모르는 거냐? 완혜(婉兮)랑 완여(婉如)는……

게다가, 소의(素衣). 적어도 소의한테 알리지 않으면――」

「아뇨,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임조우는 뒤로 물러섰다. 돌연, 잔주름이 늘어난 볼에 통증이 느껴진다. 늙음은 태허검파의 당문의 긍지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 10년이나 더 나이가 든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가식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날아가고 있었다.

「소의는 평생을 고독하게 살아왔어. 그 아이는 우리랑은 달라. 우리는 준비하고 있겠지만…… 어쨌든, 걔한테 알리지 않으면 안 돼.

대체, 왜? 소미, 왜 숨겼던 거냐?」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소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눈엔 안기가 끼인듯하였다. 「……시간……」 그 입에서, 희미하게 말이 내뱉어졌다. 소미는 어찌할 바를 모르듯 주변을 둘러봤다. 마치 기억을 잃은 한 노인이, 과거의 유물이 산더미처럼 쌓인 곳에서 자기도 잘 모르는 보물을 찾아낸 것처럼. 「단지…… 조금 더…… 시간이……」 그렇게 얘기하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대화가 끝에 이른듯했다.[\s]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 노인의 환영은 사라져있었다. 임조우의 앞에 서있는 건, 냉정한 무쌍문의 주인만이 남아있었다. 「그렇습니다…… 전 쭉 알고 있었습니다. 20년 전, 사부님의 유체가 태허산에서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훔쳐 갔을 수도 있고, 이미 사부님이 살아난 거일 수도 있겠죠――제가 무슨 수로 사실을 알겠습니까? 전 그저, 하나의 『가능성』을 알아챘을 뿐입니다.」 「사부님은 죽지 않고, 아직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

「믿긴 어렵지만, 가능성이 있는 이상 무시할 순 없으니까요.[\s]

그래서 무쌍문을 만들고, 제자들을 중원 곳곳에 파견했습니다. 그들에겐 괴수들을 쓰러뜨리는 게 다가 아니라, 사부님의 행방을 쫓고, 의심스러운 곳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겨뒀습니다.」

「그리고 전……

수년간, 사부님과 헌원검의 비밀을 계속해서 찾고 있었죠. 어느 정도 수확도 있었고.[\s]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쓸 수 있는 수단은 충분히 많습니다.」

『수단』…… 그 말은 임조우를 조금 불쾌하게 만들었다. 「사부님에게 술책을 부려봐야 아무런 의미 없을 것이다. 상대는 정위진인이니까.」 「네…… 사부님께 무례를 범할 생각은 없습니다.」 소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거기엔 슬픔도 섞여있었다. 「사부님이 절 죽이러 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피살자에겐 복수의 권리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부님을 죽인 건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저흰 지금도 끝없이 고통받고 있었겠죠. 사저는 어떻습니까?」 「……」 함께 보낸 30년의 세월이 가느다란 바늘이 되어, 태허검파의 여당문의 가슴을 꿰뚫었다. 「……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임조우가 조용히 말했다.

「좋습니다. 저도 아무것도 안 하고 죽음을 기다릴 생각은 없습니다. 이제부턴 사부님과의 싸움에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승부와 생사는 하늘에 달렸습니다――[\s]

이것이 제가 여기에 온 이유입니다. 조우 사저, 힘을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임조우는 눈앞의 붉은 머리의 여인을 지긋이 쳐다봤다.[\s]

그녀는 한때, 자신의 사매이자, 친구, 동료, 그리고 연적이자 숙적이기도 하였다. 결별을 고했을 땐, 죽을 때 까지 상종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임조우의 마음속엔 만감이 교차하여, 전혀 정리되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말해 보거라.」 소미는 불운관에서 나가, 천궁봉의 정상에서 두 팔을 펼치고는 원을 그리며 답했다. 「조우 사저의 태허파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