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WS No.88 무전기는 1950년대 영국군이 사용했던 VHF-FM 트랜시버(통칭 「휴대용 무전기」), 주로 단거리(2마일 이내)의 보병 간의 통신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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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인들이 대규모로 미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해 온 것은, 1845년 아일랜드 대기근이 발생한 이후다. 이 기근은 감자 흉작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가 기근으로 여기지 않음에 초래되어, 아일랜드 섬의 주민은 절반까지 감소하였다. 이민을 떠나거나, 재해로 사망한 아일랜드인 대부분이 게일어를 모어로 한 빈곤층이어서, 영어는 아일랜드 현지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가 되었다. 이에 따라 아일랜드 섬의 언어문화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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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반복하자. 공포는 모든 불관용의 원인이다」——이는 헨드릭 빌럼 판 론(Hendrik Willem Van Loon)이 그의 저작 『관용』(Tolerance)에서 쓴 명언. 네덜란드 태생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는 미국 작가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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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학살사건(Boston Massacre)은 영국군 병사와 보스턴 민중 사이에 충돌이 빚어져, 결국 5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1770년 3월 5일, 영국군 장교(John Goldfinch)가 가발을 구입해 주둔지로 돌아가려 했다. 가발점 직원(Edward Garrick)은 장교가 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것으로 오해하고, 장교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사관은 설명을 해주고 다시 돌아가려 했으나, 수행하던 부하(Hugh White)가 장교를 위해 불만을 품고, 점원과 말다툼을 벌이다, 그를 때려 다치게 했다. 점원은 대량의 피를 흘리며, 고통으로 인해 소리를 내어 울부짖었고, 그 자리에 있던 민중들이 화를 내며 장교와 그 부하들을 포위했다. 다른 영국군 장교(Thomas Preston)가 여러 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이들을 구출하러 오자, 민중들은 돌을 던지거나 때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영국군 병사들은 군중을 향해 발포, 5명의 시민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이 사건의 책임이 모두 영국군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국의 북미 식민지에서의 군대와 민간 사이의 마찰을 과열시켜, 미국 독립전쟁을 야기하는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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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 콩코드 전투(Battles of Lexington and Concord)는 영국 육군과 북아메리카 민병 간에 벌어진 무력 충돌로, 1775년 4월 19일 발생했다. 미국 상원에서는 1908년에 포인트 플레전트 전투(Battle of Point Pleasant)를 미국 독립전쟁(1775-1783)의 초전으로 하는 결의를 통과시켰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렉싱턴 콩코드 전투를 독립전쟁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