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궁봉(天穹峰), 입운계(入雲階).

기이한 봉우리는 하늘 높이 솟아있고, 산으로 계단이 천 척(尺)이나 이어져 있다.

고개를 들어봐도, 돌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고, 계단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안개처럼 내려앉은 구름만이 보인다.

산은 높았고, 그 정상에 있는 이도 산의 높이와 견줄 만큼 높은 사람이었다.

수천 개의 돌계단을 오르고 나면, 봉우리 끝에 「불운(拂雲)」이라는 이름의 작은 건물이 보였다.

이름, 외형, 실내 가구들의 배치까지,

이 불운관의 모든 것은 태허산의 옛 정위선인의 집과 똑같이 되어있었다.

이 곳의 주인은,

바로 신주 6대 종문 중 하나인 「태허검파(太虛劍派)」의 수장.

정위의 수제자, 「경진검(輕塵劍)」 임조우(林朝雨).

……당문의 과묵한 성격에 더불어, 오는 길 역시 멀고 험하니,

태허문하의 제자라도 용무가 없으면, 결코 입운계를 오르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 날도 여느 때와 같이, 평온하고 평범한 날이었다.

[em delay=1]똑,[/em][em delay=1] 똑,[/em][em delay=0.5] 똑.[/em] 하지만 지금 한 명의 불청객이, 조용히 웃으며 불운관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불청객은 당당한 옷차림에, 등에는 쌍검 두 자루를 매고, 붉은 머리카락과 옥과 같은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용모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강호 밖으로 나오는 일은 드물었고, 그녀의 문하제자 역시 매우 조용히 행동하고 있었다.[\s]

하지만 그녀의 명성은, 6대종의 당문과 장로에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전기 해금: 「소미」

그녀는 정위의 두 번째 제자, 현재는 「무쌍문(無雙門)」의 문주.[\s]

「무쌍선자(無雙仙子)」——소미(蘇湄).

똑. 손가락 마디로 나무 문을 두드린다. 그 소리엔 탁함이 없고, 오히려 청아하여 듣기 좋았다. 안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만, 붉은 머리의 여자는 화내는 일 없이, 시종일관 침착하게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똑, 똑. 마침내, 문이 살짝 열렸다.

방문한 이의 긴 기다림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경진검」 임조우가 천천히 밖으로 나와, 두 번째 사매를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전기 해금: 「임조우」 「사저, 얼마 만인지요.」 소미는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경쾌한 웃음을 지었다.[\s] 세상엔 수만가지의 웃는 얼굴이 있지만, 임조우는 이런 웃음만큼은 어찌 대해야 할지 알지 못하였다. 「……이십 년이다.」 「이십 년?」 「무쌍」 소미는 잠깐 생각하더니, 곧 개의치 않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 오래되었습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임조우의 귓가로 흘러들어가, 마치 바늘처럼 가슴을 찔러댔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눈앞의 여인을 쳐다보았다.

십몇 년이 지났지만, 소미는 변한 게 조금도 없어 보였다. 마치 그녀의 세계는 시간이 멈춰있는 듯하였다. 그녀의 붉은 머리칼은 아직도 윤기가 흘렀으며,

수려한 얼굴은 희고 매끄러워, 불기만 해도 깨질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눈은 여전히 크고, 사람들이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은 붉은색, 요염한 붉은색이다…… 이 요염함을 위해, 연지를 얼마나 발랐을까?

[em color=#FAFAD2 italic]……왜 그녀일까? 왜 내가 아닐까?[/em] 질투심이 순식간에 임조우의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빠르게 끓어오르더니, 이내 얼어붙었다. 그것은 마치 얼음 같지만 뜨겁고, 불 같지만 차가웠다. 소미는 마치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절묘한 순간에 한탄하기 시작했다. 「아, 이십 년입니까, 저도 늙었군요.」 「……그렇군.」 태허검파 당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옛일은 말할 필요 없고, 서로 잡담해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 그냥 용무나 말하시게.」 「네, 그럼.」 순간 소미의 눈동자에 희미한 흐려짐이 보인듯 하더니, 금새 사라진다. 이는 임조우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사저를 예방한 것은, 망아지에 대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언경(彦卿)에 대한?」 임조우의 표정이 급변하며, 목소리 역시 날카로워진다. 「그는 어디 있지?」

소미가 말한 망아지는, 두 사람의 사제이자, 「백리축구(百里逐駒)」 마언경(馬彦卿)을 가리킨다.[\s]

태허 제6검인 그는 성정이 광포하고, 세속에 구애받는 일 없이 살았다.

그와 「무쌍」 소미는 상당히 가까운 관계로, 모든 무림인들의 부러움을 받던 한 쌍이었다.

하지만, 그는 돌연 20세나 차이나는 대사저를 아내로 맞겠다고 공표해, 강호가 일시에 놀랐다.

혼례식 당일, 그는 또 술에 취해 헛소리를 지껄이며, 자기 이름이 부끄러우니 버리겠다는 등, 혼례식에 찾아온 손님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혼례 이후에도, 이 태허검파의 부당문은 얌전하게 있지를 못했다.

매년 대부분을, 그의 애마 「야혈(夜血)」과 함께 사방을 떠돌아다녔다. 그의 행실은 좋게 말하면 「의협심」으로 충만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제멋대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위로는 권세가나 부자부터, 밑으로는 건달이나 도적들까지…… 마비마(馬非馬)는 누구에게든 덤벼들고, 모두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이른바 「광인」, 그는 지난 10년간 무림에서 그 누구보다도 유명했다.

「언경…… 망아지는 그 이름을 싫어했는데,

사저는 여전히 그대로 부르시는군요…… 아, 우리 중에선 사저가 그 누구보다도 과거를 그리워하고 계시니.」

[em color=#FAFAD2 italic]아니…… [/em]

임조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em color=#FAFAD2 italic]그가 증오하는 그 과거는, 바로 네가 만들어낸 과거니까.[/em]

생각은 소리 없이 그대로 마음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녀도 굳이 그걸 말로 표현하려 하진 않았다.

「그는 어디 있지?」

임조우가 재차 물었다.[\s]

소미는 시선을 빠르게 피하며, 한숨을 쉬었다.

「망아지의 성정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는 이미 밤사이에 막북으로 달려나갔습니다.」 「국경 너머? 그는 거기서 뭘 할 생각인가?」 「다섯째 사매를 찾고 있습니다.」 「——!!!」

순간, 타오르는 분노가 그 단단한 얼음을 녹여버리고 말았다.

임조우는 앞으로 크게 한 발을 내딛으며, 은색의 장검을 소리 없이 왼손으로 쥐었다.

「소미……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이미 이십 년이나 지났다, 여전히 우리가 네게 속을 거라 생각하는가?!」

「능상이 은거하는 곳을, 너는 나와 언경이 몰랐을 거라 생각했나?

능상이 검 한 자루만 가지고 중원을 돌아다니다, 갑자기 세상 물정 모르고 큰일을 당하게 되었을 때, 너는 누가 그녀를 상남(湘南)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능상이 은밀하게 막북에 이를 수 있도록 호위해 주고, 그 신변을 돌봐온 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언경의 성정…… 허, 난 언경의 성격도 잘 알지만, 능상의 성격도 잘 안다.

당장 내일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그는 그렇게 사소한 일 따위로 능상을, 그녀의 수행을 방해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네가 말할 소식이 무엇이길래, 언경이 내게 직접 알려 줄 시간조차 내지 못한 거지?」 「……」 「……아직도 이런 방법인가, 소미, 달라진 게 없군. 네가 언경을 「망아지」라고 불러주면 그는 뭐든지 들어주겠지…… 후후.」 「넌 대체 뭐냐? 그를 마음대로 부리려고 하지 않나, 동쪽으로 가라, 서쪽으로 가라…… 너는 대체 내 부군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리고 나는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소미, 오늘 똑똑히 알려주마.

네 마음속에 동문의 정이 없다면,

나도 「무쌍」과 일전을 벌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

「……」

다년간 억눌려 온 호통을 토해냈지만, 기분이 후련하지는 않았다.

임조우는 상대의 침묵의 만족하면서도, 상대의 무언에 의아해했다.

바람 소리가 울리고, 뼈를 파고드는 서늘함이 천궁봉 정상을 맴돌고 있다.

이런 날씨는 화를 돋우기도 하지만, 거꾸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꺼트려, 의기소침하게 만들기도 한다.

심박소리를 열일곱 번이나 세고, 그녀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할 무렵, 소미가 입을 열었다. 「『경진류(輕塵柳)』……」 소미는 임조우를 바라보지 않고, 그녀의 손에 있는 연검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말 그리웠습니다……

이것 덕분에, 완여는 목숨을 보전했고, 다섯째 사매에게 일격의 기회를 주었죠.」

그녀가 고개를 들어 임조우의 눈을 보았다, 누군가를 조롱하는 듯한 표정은 어느샌가 사라져있었다. 「다행입니다, 아직 사저의 손 안에 있군요.」 「넌——」

20년 전의 그날을 떠올리며, 임조우는 무의식적으로 한걸음 물러났다.[\s]

한기가 등에 맺혀 이슬이 되고, 식은땀이 되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년간, 당시의 모습은 뼛속까지 사무쳐 그녀를 계속해서 괴롭혀왔었다.

이젠 그 지난 일을 묻어버려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했건만,

오늘 둘째 사매의 방문이, 옛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

「우리 옛일은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네. 옛일은 집어치우죠, 그 일은 이미 끝났고, 다시 떠올려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얘기하려는 건 새로운 소식입니다.」 「……뭐!?」 임조우는 순간, 사매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다. 「네…… 말은, 사부님이?」 「네.」 소미는 하늘을 보다,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 입가에 작은 미소를 떠올렸다. 「우리의 헌원검이 다시 검집에서 나올 때가 되었습니다. 아마 제 짐작이 맞는다면——제가 먼저겠군요.」 「그…… 넌, 그럴 리가…… 그……」 태허검파의 여당문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사부님은 돌아가셨다.」

「맞습니다, 하지만 선인이 어찌 죽겠습니까? 믿어주시지요. 사부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저, 사저, 망아지…… 우리 일곱중 어느 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냐……」 임조우는 상대의 터무니없는 말에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만약……」 중얼거리는 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다시 소미의 얼굴을 보았을 때, 임조우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노의 극에 달한 미소였으며, 지칠 대로 지쳐버린 다음의 미소였다.

「사부님께서 그날의 일을 청산하러 오신다면, 널 처음으로 찾겠구나, 소미.」 태허검파의 여당문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뇨, 아뇨, 사부는 주동자가 누군지 모르십니다. 추정하기에, 저는 두 번째 일 겁니다——하지만, 순서는 중요하지 않죠. 그래서 제가 사저를 찾아온 것입니다.」 유유히 떠다니는 흰 구름을 바라보던 시선이 다시 임조우를 향했다.

임조우는 순간 심장이 멎은 듯하였다.[\s]

그것은 그녀가 잘 알고 있는, 두 번째 사매의 눈빛이었다.

소미는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두려움이나 당황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부님께선 이미 한 명을 죽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