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 않지만 꺾인 곳이 많은 계단. 「적연진인」은 묵묵히 그 계단을 걸어 내려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고운 모습을 한 여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그녀는 적연을 조용히 따라갔다. 때로는 가까이, 때로는 멀리서.
소녀 역시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침묵은 적연진인의 침묵과는 달랐다. 그 소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은, 그녀가 만드는 모든 걸음은 이 세상과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 또한 그랬다.
적연 이외의 사람에게, 그녀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렇게, 죽은 듯이 고요한 산숲 속, 오직 적연만이 그 소녀가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적연은 고개를 돌려 살폈다. 산숲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한 송이의 먹꽃처럼, 연기가 퍼져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발끝에 가볍게 힘을 넣더니, 순식간에 십여 장(丈)이나 나아갔다.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갑작스레 적연 앞에 나타나곤, 길을 막았다. 그녀 위로, 조용히 춤을 추는 먹꽃이 보였다.
적연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소녀는 중얼거렸다.
여자아이는 어깨를 들어 올렸다, 멀리 보이는 검은 연기를 한 번 보더니, 물었다.
정위는 하늘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적연의 가슴을 울렸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소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소녀는 그녀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매우 진지했고, 그녀의 웃음은 수줍음이 가득했다.
그녀의 말은 매우 열정적이었고, 존경과 믿음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그녀는 몹시 눈에 익었다.
아주아주 오래전, 그들과 밤낮으로 함께할 때가 있었다……
그들과 밤낮으로 함께할 때가 있었다…… 아주아주 오랫동안.
미간에서부터 떨림이 올라와, 적연은 눈을 깜박였다. 마치 그 아름다운 소녀를 좀 더 선명하게 보려는 듯.
그녀의 나이는 약 17, 18살, 딱히 이상한 건 없었다. 단지 그녀가 있는 세계의 시간이 얼어붙어 있었을 뿐.
소녀는 진짜가 아니다. 그녀는 그저 적연의 망가진 뇌가 만들어낸 무수한 환영 중 하나였다.
하지만 환영들이 오고 가고,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다, 대부분은 결국 떠나버렸고, 그 소녀만이 남았다——
——자신을 살해한 그 여자만이.
자신을 죽였던 사람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어딨으랴?
존재하듯 존재하지 않는듯한 소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적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했다. 수천 년, 수만 년의 세월은 여전히 그녀의 감정을 죽이지 못했다. 그것들은 그저 묻혀있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길게 느껴졌던 침묵은, 적연이 입을 열자, 다시금 짧게 느껴졌다. 마치 애초에 침묵하지 않았던 듯, 마치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던듯 짧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적연은 침묵을 지켰다. 슬픔이 여름날의 비처럼, 마음속에 끝없이 쏟아내렸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10년이 넘게 담아뒀던 질문을 던졌다.
조우라는 이름의 소녀는 눈을 뜨고 한숨을 쉬었다.
전기 해금: 「적연」
전기 해금: 「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