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높게 떴다. 나찰인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매우 작은 소리였지만, 그를 곁에서 보고 있는 이소상의 귀를 피해 갈 순 없었다.
나찰인은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이소상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수회 반복하더니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녀는 말하면서, 희고 가는 손바닥을 나찰인의 눈앞에 흔들었다.
[em italic]……주화입마의 전조인가?[/em]
어떤 생각이 떠오르더니, 순간 나쁜 마음이 이소상의 마음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
갑작스러운 감정들은 소녀의 마음을 집어삼켰다.
순간의 놀라움, 후회, 고통 그 밑에, 절망적으로 강렬한 살의가 있었다.
주화입마자에겐 죽음만이 유일한 자비이다——
이는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사부가 지치지도 않고 계속 가르쳤던 것이자, 태허일맥(太虛一脈)의 사명, 그 자유로운 『자재문(自在門)』의 유일한 철칙이었다.
소상의 『검심』이 순간 명경(明鏡)의 경계에 이르렀다.
그녀의 오른손이 곧바로 뻗어 나와, 계검(啓劍) 『열공(裂空)』의 형태를 취하였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손은 어떠한 마(魔)라도 무찌를 수 있는 무적의 무기가 되어있었다——
나찰인은 손을 뻗어, 우아한 움직임을 보였다.
나찰인은 얘기를 계속했지만, 소상에겐 다시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되어있었다.
나찰인은 어리둥절해 하더니, 잠시 생각을 하곤 답했다.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소상을 보며, 나찰인은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가슴이 아리는 게 느껴졌다.[\s]
딱히 닮은 곳도 없어 보이는 동양인 소녀와 함께 있는 데도, 『그녀』가 계속 떠올랐다.
[em italic]아아, 어느샌가, 이렇게나 세월이 흘러버렸군……[/em]
[em italic]카렌……[/em]
나찰인은 약간 붉은빛이 드는 황색의 말라버린 모래를 멍하니 쳐다봤다. 눈앞에 매력적인 미소와 아름다운 눈을 가진 그 소녀가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그렇다. 그녀는 그를 그렇게 불러왔다……[\s]
그의 기억 속, 소녀는 손을 뒤로한 채 서있었고, 그녀의 은빛 머리칼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의 귀에 남아있었다. 그때의 시간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조금도 나아가지 않은 것 같았다.[\s]
하지만, 지금은 이미 30년도 넘게 지났다.
어느샌가, 나찰인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찰인은 스스로를 억지로 깨웠다. 비록 그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남고 싶어 했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추억을 벗어던지는 게, 허공만장과의 싸움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천명과 신주 사이에 전쟁 있었을 때, 나찰인은 금방 알아차렸다……[\s]
같은 『진기』라는 힘을 다루는 법에 있어, 동방과 서역 간에 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그는 이를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서역은, 진기를 역병이라 여겨,
그 오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으며, 그에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켜왔다.[\s]
반대로, 동방은 그걸 받아들여, 이용했고,
신체의 능력을 높이는데 사용하였다.
분면, 천명에 비하면, 신주의 과학기술은 뒤처져있었다.
하지만, 진기에 대한 이해에 있어선, 동방이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을까?
이소상은 고민했다.
무언가가 소녀의 웃음보를 터뜨린 듯, 소상은 신나게 웃어댔다. 그리곤 다시 얘길 계속했다.
나찰인은 살짝 미소 지었다. 그에게 있어, 붕괴——동방에서 말하는 『진기』란, 생명력을 의미한다기보다, 생명의 파괴자란 표현이 알맞았다. 하지만, 그는 소녀의 생각을 고치게 할 필요를 못 느꼈다.
이소상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찰인은 잠깐 생각했다.
소상은 매우 의아해했다.
소상은 그를 멍하게 쳐다보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나찰인은 순간 흠칫했다. 그는 신주에 그런 규칙이 있는 줄 몰랐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은 계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를 지금 상황으로 만든 건, 진짜 「흑연백화」였다.[\s]
만약 모조품으로 반전을 시도했다면, 아직 수련이 부족하기에 실패했을 것이고, 결국 동방의 신기한 무공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소상은 자기도 모르게 뾰로통해하더니, 이내 표정이 밝다가 어두워지다가를 반복하면서 부끄러워했다.
나찰인이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소모해가며, 매일 치료해 주었다는 걸 떠올렸는지, 그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태허검기』는 바깥사람에겐 절대로 알려줘선 안 되는 것이었다.
소녀는 잠깐 망설이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이소상은 생각을 거듭하더니, 입술을 깨물곤, 흥분한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