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와트는 의식을 잃기 전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얼마나 지난 지는 모르지만, 대도서관의 열람실에서 의식을 잃었고…… 다시 깨어났을 땐, 이미 감옥에 갇혀있었다. 문은 차갑게 잠겨있었고, 그의 외침에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비앙카…… 셰익스피어 선장…… 탈레스 소장님…… 그는 그녀들이 웃으며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상상을 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발소리? 그는 허겁지겁 귀를 문에 바짝 붙였다. 발소리는 바로 문 반대편에서 멈춘듯했다. 열쇠 소리가 들린다. 문의 잠금장치가 돌아가고 있다. 학자 선생님, 정말로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어…… 음, 누구세요……? ……그러게요. 선생님도 분명 혼란스러우시겠죠. 제 이름은 「앨리스」입니다. 지금은…… 이 건물의 관리를 맡고 있죠. 우선 절 따라오세요, 걸으면서 이야기해요. ……이곳은 어떤 박사님의 실험 기지였던 곳이에요. 박사님은 고독한 분이었어요. 원래부터 밖으로 나오는 걸 즐기지 않으셨기도 하고——그 분의 생각도 도시 사람들과 크게 달랐기 때문이에요. 도시의 사람들은 박사님이 제안한 사회의 발전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박사님을 위험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그를 추방시키고 말았죠. ……하지만 박사님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는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도시 밖의 다양한 사람들과 거래를 하며,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이 실험 기지를 짓고, 자급자족하며 살아오셨어요. 그리고…… 저와 같은 존재를 만드셨죠. ……당신을, 「만들어요」? ……네. 말하기 좀 곤란한 건데…… 이렇게 스스로 말하기도 이상하네요…… 저…… 전 인간이 아니에요. ……이, 이거 비유 같은 거죠? 아니요…… 제발 놀라지 말아주세요. 속이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저는 박사님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에요. 「4호기」. 선생님께서 현재 보고 계신 「앨리스」는, 단지 그 기계의 단말 장치에 불과해요. ……뭐, 인간의 육체랑…… 매우 닮아 보이지만요. …… ……제가 말한 게 믿기 어렵다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이다음에는…… 더욱 믿기 힘든 사실들이 있어요. 물론 저도 선생님이 납치된 이유를 바로 설명드리고 싶긴 하지만…… 우선은 이 「무언가」를 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마, 마음의 준비요? ……저, 절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박사님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장소…… ……바로, 제 「뇌」로요. ……당신의……뇌…… ……당신 말고도 박사님의 조수들이 두 명의 학자를 더 납치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그걸」 보자마자 협력하는 걸 완고히 거부하더군요. 한 명은 조금도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고, 무슨 말만 해도 도망치려 하고, 다른 쪽은 발작이 온 듯 끊임없이 기도 주문 같은 걸 외는 바람에, 소통할 방법이 없었어요. …… 결국엔, 모두 「죽고 말았죠」. 주, 죽어요……? 네…… 그리고 선생님은, 저 앨리스의…… 마지막 희망이에요. 다…… 당신들은…… 제게…… 뭘 하려…… 아뇨, 아니에요…… 여기에 「당신들」 같은 건 없어요. ……? 여기에는…… 지금 저와 당신뿐이에요…… 박사님과…… 조수들, 그리고 다른 피해자분들은…… 「모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 시작은…… 이틀 전, 그러니까 대략 50시간 전. 박사님이…… 20시간 넘게 작업을 하신 후, 갑자기 쓰려지셔서…… 조수분들도 당황해서…… 박사님을 「치료」하려 서둘렀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어요…… 제가…… 박사님께 다가갔을 땐…… 이미……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리고…… 박사님을 잃은 조수분들은, 앨리스를 계속해서 이용할 방법을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선생님을 납치했어요…… 그리고 다른 두 학자도…… 그러자, 앞서 말한 듯…… 조수들과 납치된 두 학자들 간에 충돌이 생겨서…… 이제…… 남겨진 건…… 오직 앨리스뿐이에요…… ……물론, 선생님은…… 다행히 아직 감옥 안에 잠들어 계셔서…… 저, 저기…… 「지미」라고 불러주세요. 지미 선생님은…… 앨리스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 그래서…… 제, 제가 뭘 하면 되는 거예요? …… 아, 앞에 계단에서 오른쪽이요. ……거의 다 왔어요. 계단의 끝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문이 있었다. 문을 미는 소녀의 두 손은, 떨고 있는 듯 보였다. 이 문이 열려도…… 부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으시길 빌어요…… ……왜냐하면, 이 실험이 얼마나 많이 윤리에 어긋나있다고 해도—— 그로 인해 탄생한 생명은…… 그 생명은…… ……살고 싶어 하니까요! 여, 여긴…… ……제 사고 중추예요. 제겐 유지 보수 자료를 읽을 권한이 없어서…… 박사님이 세상을 떠난 후엔, 다른 사람이 유지 보수 절차를 배우게 한 다음…… 다시 저에게 가르치는 수밖에 없었어요. 아니…… 정확하게는, 제게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하지만…… ……하지만…… 점검만은 정기적으로 받고 싶어요. ……그렇지 못하면, 제…… 제 생명은 200 시간 밖에 지속할 수 없어요. 자, 잠깐만…… 정리 좀 할게…… 그러니까…… 너는 사고를 할 수 있는 기계고…… 여기가, 네 뇌에 상응하는 부분이라는 거야? ……네, 간단…… 하게 말하면요. 그리고…… 사람의 뇌가 잠을 자고 쉬는 것처럼, 네 「뇌」도 정기적으로 점검을 해야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거야? 네. 그럼…… 당신을 만들어낸 「박사」는 당신의 행동을 「완벽히 통제」 하기 위해…… 유지 보수 자료를 읽을 권한을 주지 않아, 이를 스스로 할 수 없도록 만들었나 보네. 맞아요. ……그, 그거 참 이상하네. 「박사」란 분께선 왜 그렇게 하신 거야?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생각엔…… 박사님은 그저…… 예상외의 상황에서도 저를 제어할 방법을 남겨두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예상외의 상황? 제, 제어를? ……왜, 왜 그런 게 필요해? ……저는, 「아름답게 만들어진」 기계가 아니니까요. ……? …… 이 캐비닛에는 특별한 게 없어 보여요—— 선생님은 제 안에 그냥 복잡한 전기 회로만 있을 거라 생각하시죠? 그, 그거야 스스로를 「기계」라 부르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아? 그건…… 제가 절 스스로 「기계」라 칭한 이유는…… 「적절한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게…… 무슨 의미야? ……만약 저를 다른 말로 설명한다면—— ——「뇌가 담긴 기계」가 맞겠네요. ……! 전 「4호기」예요. 과거의 1호기는 단순한 전자 계산기. 2호기는 인공 배양으로 결합된 뉴런을 더한 것. 3호기는 문어의 뇌를 더한 것. ——그리고 저, 「하이브리드 슈퍼 바이오 컴퓨터」를 만들자는 제안으로 인해, 박사님은 거리에서 추방되고 말았죠. …… 저는 이 벗어날 수 없는 「원죄」를 직접 맞서야 해요…… 만약…… 당신이 도와주실 수만 있다면요. 소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얼음장 같은 강철문을 가리켰다. 침묵이 이어지는 이 분위기에 숨이 막힐듯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문의 자물쇠를 건드리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가…… 마치 꽃병이 깨지듯 산산조각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 자신도, 그저 「두개골」이라는 그릇에 담긴 「젤라틴」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라는 존재는, 사고할 수 있는 주체를 지칭하며, 정신의 기원이기에, 태초부터 미적가치가 부족한 「불순물」을 혐오한다. 모순적이게도, 「나」의 「미적가치」는, 객체의 본질이 아닌, 물질적인 순수성에 있었다. 개인이 주관적 존재와 객관적 견해를 완전히 분리하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애초에, 우리의 영혼 또한, 신경 전달 물질과 전기 신호가 만들어낸 화음에 불과하지 않던가. 「진실은 없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 사실상, 자신과, 「앨리스」의 차이점은…… 그저 그 「젤라틴」의 재료가 「합법」인가 아닌가, 그뿐이다. ……게다가, 그녀는 튜링 선생의 「이미테이션 게임」을 완벽하게 이기고 있었다. ……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차가운 손가락에 손을 댄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움츠렸다. 마음속에 있던 「꽃병」이 갑자기 사라졌다. 주저 없이 잠금장치를 돌려 문을 연다.

배양 탱크의 중심에는 다양한 전기 장치들로 가득 차 있었고, 커다란 「젤라틴」 덩어리——몸의 일부인 게 분명한——를 보았다. 생물학적인 지식이 모자라, 어떤 동물이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배양 탱크의 안은 어두웠다. 그저 진공관에서 나오는 따뜻한 주황빛만이 깜박이고 있을 뿐이었다.

가볍게 손바닥을 배양 탱크의 유리벽에 대어보았다. 그녀의 차가운 손가락과는 다르게…… 따뜻함이 느껴졌다…… 마치 인간의 몸처럼.

솔직하게 말해서, 박사님의 조수들처럼, 가…… 강제로 선생님이 제 시스템을 유지하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하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거죠. 전…… 더 이상 죄를 쌓고 싶지 않아요. 비록…… 제겐 선생님이…… 정말로 필요하긴 하지만요. ……죄송해요, 저 혼자만 좋을 얘기를 했네요. 소녀는 스커트 안쪽의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더니, 그의 손에 올려놓았다. ……이곳의 모든 방을 열 수 있는 열쇠 꾸러미예요. 지미 선생님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저는 그대로 받아들일게요.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든, 반드시 당신을 지상으로, 당신이 속해있는 세계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보장해 드릴게요. ……저를 반드시 제거되어야만 할 존재로 보신다고 해도, 절 죽게 내버려 두는 결정을 내리신다고 해도…… 전——
……그, 그런 말 하지 마! 박사와 조수들이 잘못된 일을 많이 했다고 해도…… 애, 앨리스는 아무런 잘못도 없잖아? ……! 다…… 당신은…… 저를…… 잘…… 모르시잖아요…… ……. ……그, 그래, 지금의 나는 분명 아무것도 모른 채,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몰라. 하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잖아! 이건…… 앨리스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게 아니야…… 앨리스를 이용하고, 이런 상황에 혼자 내버려 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는 거야! ……!! 저, 저, 저는…… ……물론, 나도 내가 속해있는 세계가 있어, ……물론, 나도 정말 얼떨결에 여기로 납치된 게 맞아, ……게다가, 너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한 명의 기술자로서—— 아니,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에 빠진 널 보고도 구하지 않고 죽게 내버려 두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어! ……지미……선생님…… 앨리스, 네 생명이 200 시간 후에 끝나는 일은 결코 없을 거야. 내가 꼭 약속할게! 같은 시각—— 앞에 골목에서 오른쪽! 직진, 그리고 왼쪽! 언덕 아래의 슬럼가를 지나야 해! 아직 갈 길이 머니까, 지치지 말라고! 여기서 큰 길을 벗어났어! 앞으로! 앞으로!! 저기——도시 교외까지 나온 거 같은데요? 네이트의 후각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기 모래 위의 얕은 구덩이를 보세요, 이건 삼륜 로봇 특유의 이동 흔적 아닌가요? 보세요, 바퀴를 이렇게 조정하면, 이런 특이한 자국이 남게 됩니다. 아하——장애물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능동적으로 뛰어넘었나 보네요! 네이트! 이 바퀴 자국, 지미가 납치될 때 생긴 게 확실하지? (킁킁) 확실해! 따라가는 게 맞아! 좋았어! 흥……납치범 녀석들, 꼼짝 말고 있어라! 윽——지독해! 이, 이거 대체 무슨 냄새야!? ……유황 호수군요. 아마 화산 활동 때 생겼겠지요. 쳇, 문제가 생겼군요. 박사! 여기 냄새 진짜 지독해! 네이트는 이제 냄새 못 따라가! 그래, 알겠어. 이 썩은 계란 냄새란…… 이런 유황 호수들은 대량의 황화수소를 대기 중으로 발산합니다. 황화수소는 유독성일 뿐만 아니라, 대기 중에 농도가 높으면 오히려 냄새가 나지 않게 돼서…… 급하게 준비 없이 들어가는 건 죽음을 재촉하는 것과 다를 바 없죠. 그럼…… ……이런 상황에서, 납치범들은 어떻게 지나간 거죠? 아마 방독면 같은 걸 장비했을 겁니다. 보세요. 여기서 로봇이 잠시 머물렀고——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땐, 이전보다 더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서 장비를 교체했을 겁니다. 네이트. 빨리 돌아가서 원래 계획대로 시청에서 도서관장과 만나, 방독면과 산소통, 그리고 정밀 수색을 위해 최대한 많은 인원을 모아달라고 해 줘! 많을수록 좋아! 문제 없어! 박사! 그래서, 우린 이제…… 여기서 대기하는 건가요?? 이건 「대기」가 아니라, 현 위치에서 「휴식」입니다. 원기를 회복하고, 때를 기다리는 건 작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요. 그러고 보니…… 발키리양, 군인으로서, 전투를 지휘한 적이 있나요? 전투? 전쟁? 그 수천 명이 모여서 서로 죽고 죽이는 바보 같은 거요? 발키리는 인류의 운명을 위해서만 싸우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용병이 아니라고요! 하하, 좋은 말이네요!! 아, 당신의 시대가 정말 부럽네요…… 저도 전쟁이 고귀하지 않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 전쟁은 야만인의 영광, 문명인의 수치입니다. 전쟁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잔인하다는 걸 깨닫게 되죠. 화가 머리끝까지 나도 다시 기쁨이 찾아올 수 있고, 번뇌가 찾아와도 다시 평온해질 수 있죠——하지만, 파괴된 나라는 다시 존재할 수 없고, 죽은 사람 또한 되돌아오지 못합니다. 게다가,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적 또한 내일의 아군이 될 수 있습니다. 그저 이익을 위해서 말이죠. 흠. 그럼 계속 부러워하세요…… 발키리들은 절대 역사 속의 군인들처럼 이익을 위해 싸우진 않으니까요! ……아뇨. 「이익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저기요! 그건 무슨 소리예요? 절 무시하는 거예요!? 아니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그저 이론에 대해 늘어놓았을 뿐입니다. 소위 「전투」라는 것은, 결국, 폭력을 통한 이익의 재분배입니다. 이기적이든 아니든 말이죠——이것이 단순한 사냥에 불과해도, 잡힌 사냥감은 가죽이 벗겨지고, 그것의 고기는 누군가의 배에 채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전투」가 한 번 일어나면, 세계에 분명한 변혁을 가져옵니다. 어떤 변혁은 사람들이 원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건 원하지 않던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간에——「전투」에 관여한 모든 이는 이 「변혁」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스스로의 「책임」을 깨달은 전사만이, 진정한 「군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기계처럼 명령만 따르지 않는. …… 당신…… 진짜 「고고학자」 맞아요? 아닌 거 같은데? 하하——그럼 절 뭐라고 생각하나요? 「동방원정군 총사령관」이라도 되어 보이나요?

주:

1798년, 나폴레옹이 프랑스 1공화국의 「동방원정군」을 이끌고 영국의 우방, 오토만 제국의 속국인——맘루크 치하의 이집트로 진군했다. 이 움직임은 영국과 그 우방이 통제하고 있는 유라시아를 향한 교통로를 열고, 인도의 티푸 술탄이 영국에 저항하는 걸 도와, 영국 자체를 흔들기 위함이었다.

비록 「이집트-시리아 원정」의 전략적인 목표까진 이루진 못했지만, 나폴레옹은 이집트에서의 거듭된 연승으로 자신의 명성을 크게 드높였다.

P.S. 피라미드 아래에서 맘루크 군과의 결전을 앞두고, 29세의 나폴레옹은 이러한 연설을 하였다. 「병사들이여, 기억하라——저 피라미드의 꼭대기 위에서, 40세기의 역사가 조용히 우릴 지켜보고 있다.」

……
……이렇게 ……다, 다시. 그렇구나, 이렇게 작동하는 거였네. 앨리스! ……시, 시작할 준비가 됐어. 정말인가요?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그렇게나 빨리 익히시다니! 사실 점검 과정에 기술적인 어려움은 없었어…… 그냥 번거로울 뿐이지. 그리고…… 이 자료를 읽을 권한을 바꾸는 건 불가능해서…… 우선은 혼자 읽고 난 다음에, 방법을 가르쳐줄게. ……미안해. 아뇨, 괜찮아요! 저도…… 지미 선생님과…… 같이 배우고 싶어요. …… 그, 그럼 1호 창고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앞으로 나한테 존칭을 쓰는 건 그만뒀으면 해…… 너무 이상한 것 같아. 아, 알겠어요! 이, 이 유리로 된 배양 탱크를 꺼내고…… 상태창에 표시된 거에 따라…… 아, 안쪽 버튼들을 눌러주면 돼. 아…… 이렇게 간단한 거였구나. 이래서 박사님이, 배양 탱크를 조작할 때, 제가 보지 못하게 한 거군요. …… 박사에게, 앨리스는…… 뭐였어? 그건…… 저도 잘 몰라요. 제게 그분은 「앨리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신 분…… 어쩌면, 그 이름을 붙여주신 분 역시도 자기모순적이셨으려나요. ……? 저기…… 알고 계신가요? 「앨리스」는 어떤 동화 속 이야기의 주인공의 이름이래요. 그…… 어떤 토끼를 발견하고, 그 토끼를 따라 콩나무에 오르는 이야기예요. ……콩나무? 어…… 미안…… 아, 안 들어봤어…… 호, 혹시 그 토끼를 따라가다, 구멍에 빠지진 않았어? 어라…… 그건…… 다른 토끼 얘기인가요……? 어쨌든, 주인공인 앨리스는 턱시도를 입은 토끼를 쫓다가, 구름 위로 높이 솟은 콩나무의 줄기에 이르렀어요. 콩나무엔 구멍이 나있어서——토끼는 그 구멍에 들어가자마자 사라지고 말았어요. 앨리스가 다가가서 보니, 콩나무 속에는 강력한 상승 기류가 흐르고 있었어요! 거기서, 앨리스는 고민했어요. 「곤란하네, 토끼가 한 것처럼 날아오르면, 스커트는 어떡하지?」 앨리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콩나무의 잎 하나가 그녀 앞으로 날아와서——그 잎 위엔 예쁜 유리병이 있었고, 아름다운 글씨로 「마셔」란 말이 적혀 있었어요. 뭔가 수상한데……? 어쨋든…… 다음은 5호 창고…… 이번엔…… 네가 직접 점검 절차를 진행해 볼래? 네, 넵! 아마…… 문제없을 거예요! 유리 탱크를 꺼내고…… 상태창의 표시는 세 칸…… 그럼 초록색 버튼을 누르면…… 이거 맞죠? 맞아, 그거야. 그리고 이제 6호 창고…… 그래서, 이야기의 「앨리스」는 정말로 그 병에 있는 걸 마셨어? 마셨어요…… 그러고 나니…… 그녀의 영혼이 몸 밖으로 나오고 말았어요. 여, 여, 영혼이 몸 밖으로 나와!? ……아마 이야기 속에서만 나오는 마법 같은 거 아닐까요. 여하튼, 앨리스의 영혼은 기류를 따라 콩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왔어요. 콩나무의 높이를 확인하려 다시 밑을 돌아봤을 때—— ——자신의 몸도 어느샌가 영혼을 따라 올라와, 그대로 평평한 콩꼬투리 위에 눕혀져 있는 걸 발견했어요! 저, 점점 귀신 이야기로 변하는 느낌인 걸…… ……귀신 이야기? 박사님께서 인간들은 영혼이 몸 밖으로 나오는 걸 두려워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정말이었군요…… 그 느낌 자체를 두려워한다기보다는, 죽는 걸 두려워한다고 하는 게 맞을 거야. 애초에, 어느 누구도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일은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 현실에서 그렇게 된다면, 그건 그저 「죽음」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지 않을까. ……무슨 말인진 알겠어요. 하지만 이야기 속의 앨리스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앨리스는 손을 뻗어 자신의 몸을 만지려 했는데…… 갑자기 「펑」하고, 영혼과 몸이 다시 하나가 되었어요! 앨리스는 생각했어요. 「이 날으는 양탄자 같은 콩깍지가 날 어디로 데려가려나?」 그러자 콩꼬투리가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앨리스를 태우고는, 「휙」하며 구름 위로 날아올랐어요! 거기서, 꼬투리는 바람은 맞으며 계속 자라나, 어느새 커다란 배만큼 커졌어요. 콩깍지의 「갑판」 위엔 문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엔 「기적의 세계로」라는 말이 적혀 있었어요. 앨리스는 그 문 안으로 들어갔어요. 문 안쪽에는 계단이 밑으로 이어져 있었고, 빛이 매우 어두워서, 그녀는 실수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내려갔어요. 앨리스가 계단의 맨 밑부분에 도착했을 때, 벽 귀퉁이에서 깜박이는 등불 밑에, 작은 글씨가 쓰여 있는 걸 발견했어요. 「이 문에 발을 들이는 자, 바깥 세계의 상식을 버려라.」 ……『신곡』을 따라한 거 같은데. 『신곡』? 그, 그게, 신곡에서 나오는 「지옥의 문」 위에 있던 문구인데. 「이 문에 발을 들이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정말 절망적인 말이네요. 그, 그야 「지옥」이니까. 그, 그래서, 이야기의 앨리스는, 「상식」을 버리고 문을 넘었어? 네, 박사님은 앨리스가 모험을 좋아하는 소녀라서, 그녀에게 있어 「상식」을 버리는 건 간단한 일처럼 보였을 거라고 하셨어요. 앨리스가 두 번째 문을 지나자, 갑자기 모든 게 확 밝아졌어요. 지평선 너머로는 눈에 덮인 웅장한 산이, 그녀의 눈앞에는 빠르게 흐르는 큰 강이 보였어요. 강기슭에는 작은 기차역이 있었는데, 관리실에는 한 소년이 앉아서 사과를 먹고 있었어요. 앨리스는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어요. 「다음 기차는 몇 시에 도착하나요?」 소년은 대답했죠. 「3분 전에 하나 지나갔어요.」 앨리스는 곤란해하며, 다시 그에게 말했어요.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3분 전에 지나간 기차는 탈 수 없는걸요.」 소년은 고개를 젓더니, 손의 사과를 내려놓았어요. 「여기서 그런 『상식』은 잊으세요. 여기는——거울 하나만 있으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요.」 그렇게 얘기하고, 소년은 자신의 책상에서 작은 거울을 꺼내더니, 문 정도의 크기가 될 만큼 「쭉」 잡아당겼어요. 「들어가세요, 이 거울의 반대편은 5분 전의 역이에요.」 거울 속의 모든 것은 거꾸로 되어 있었어요. 앨리스가 의심스러워하며 거울을 찔러보니, 거울의 표면은 거미줄처럼 물결이 일었어요. 거울의 반대편에선 소년과 비슷한 옷을 입은 소녀가, 앨리스에게 넘어오라는 듯, 손을 흔들고 있었어요. 앨리스는 조심스레 거울 속을 향해 발을 들어 올렸고—— ——신발 끝부분이 거울에 닿자, 거울 속의 세계가 갑자기 뒤집어졌어요. 앨리스는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했지만요. 뒤집히는 거울…… 아마 뉴턴식 망원경이 아닐까? 뉴턴식 망원경? 그건…… 천문 관측 같은 데에 쓰이는 건가요? 응. 오목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를 이용하는 망원경이라서, 위아래가 뒤집혀서 보여. 그리고 망원경 시야의 중앙에서 상을 끊어내야 해서, 여기에 쓰인 「제2 반사경」의 지지대 때문에 거미줄처럼 보이는 회절 무늬를 만들게 돼. ……박사님의 이야기에서 묘사된 거랑 정말 비슷하네요! 아! 그럼 사과를 먹던 「소년」이 바로 그 유명한 「뉴턴」인 걸까요? 그, 그건 모르겠어…… 그, 그래도, 이건 동화니까…… 어떤 상상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 17호 창고? 벌써 이렇게나 많이도 점검했나? 벌써 익숙해졌네, 앨리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이 정도야 당연한걸요. 지미 선생님——아니, 지미는…… 무리하고 있는 거 아니죠? ……그, 그, 그럴리가 없잖아! 무, 무슨 소리야!. 하지만, 거의 매번 창고 문을 열 때마다, 당신은…… 제겐 보이지 않게 하면서……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고 있잖아요…… ……이, 이건…… 생리적인 현상이라…… 그게 바로 무리한다는 거예요! 생리적인 불편함은 부담 아닌가요? ……이것들이 일반인에게 얼마나 역겨워 보일지는 저도 잘 알아요—— ——그러니까 괜찮은 척하지 않으셔도 돼요! ……미, 미안해. ……아니에요……저도……너무 심하게 말했어요. 애초에…… 절 위해 참고 계신 거니까요…… …… 괜찮아요! 이제 저도 점검하는 데엔 상당히 익숙해진 것 같으니…… ……지미 씨는 그냥 저와 말동무만 되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 어라…… 방금 이야기를 어디까지 했더라…… 「앨리스」…… 「앨리스」가 거울을 건넜어. 아! 맞아요! 앨리스가 거울을 건너자마자,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증기 기관차가, 흰 설탕 같은 연기를 내뿜으며, 정거장에 도착했어요. 작업복을 입은 다람쥐가 기관실에서 고개를 내밀며 외쳤어요. 「치즈 아일랜즈행 열차가 도착했어요! 치즈 아일랜즈행 열차가 도착했어요!」 앨리스는 「치즈 아일랜즈」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역에 있는 소녀에게 물었어요. 「치즈 아일랜즈는 치즈로 가득한 곳인가요?」 소녀는 웃으며 대답했어요. 「네, 치즈 아일랜즈는 은하수에서 가장 아름다운 군도랍니다. 고다 치즈로 덮인 황금색 모래 사장과, 블루 치즈로 지은 파란색의 성이 있죠! 케이크 나무와 사탕 꽃도 있는데——전부 먹을 수 있어요!」 비록 앨리스는 모험을 좋아했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에도 신경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앨리스는 다시 물어봤어요. 「치즈나 케이크 같은 단것들…… 계속 먹으면 없어지는 거 아닌가요?」 기차역의 소녀는 웃으워하며 말했어요. 「이 말을 못 들어 보셨나 보네요——『자정은 기적의 순간!』 자, 기차가 곧 출발하려 해요! 얼른 타세요!」 이야기가…… 갑자기 소녀스럽게 변했네. 어라? 그……그런가요? 저는 초콜릿이나 케이크, 치즈 같은 걸 맛보는 게 불가능해요. ……사람들은, 이런 고칼로리 음식들을 「소녀스럽다」라고 생각한는 건가요? ……아, 아니, 전혀 그렇진 않아. 음…… 인류의 문화는 정말 어렵네요. 저기…… 너무 실망하진 마. 애초에, 「인류」 그 자체도 「모순」의 또 다른 말이니까. …… 그 말, 박사님께서도 하셨어요…… 「인류」라는 건, 모든 이득은 다 원하면서도, 어떻게든 손해는 피하려 해——만약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표면상의 목표라도 지키려고 하지. 인류란…… 자기 기만에 능숙하니까. 자기…… 기만이요?? ……예를 들면…… 그러니까 예시로…… 앨리스는 이런 단말 장치를 가지고 있기에, 스스로를 소녀라고 생각한다——이런 건가요? 풉…… 그건…… 기만이 아니지 않을까? 앨리스가 일련의 「연산 중추」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너 스스로가 소녀라고 느낀다면, 그, 그게 소녀인 거지. 게다가, 스스로부터 「인류」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그, 그런 호칭은…… 그냥 정신적인 상징에 불과하지 않을까?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알겠어요! 앞으론 당당히 「소녀」라고 말할게요! 헤헤! ……4번째 줄, 노란색 버튼, 32호 창고도 끝났어요! 좋아, 이제 26개밖에 안 남았네요! 이,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점검이 먼저 끝날 거 같네. …… 점검이 끝나면…… 지미는…… 떠나겠죠? 음…… 일단은…… 그러겠지—— ——하지만! ……하지만? 이, 「이번」에 떠나기 전에, 나, 난 「앨리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