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을 지키고, 이 행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이 공화국에 내려진 천명입니다」——씩씩해 보이는 기사는 이렇게 자신의 조국을 소개했다. 적도 북부의 제도에서부터, 최남단의 빙하까지, 공화국은 한치의 빈틈도 없이 이 남미 대륙을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지구 중심부로 통하는 「와카 터널」 역시 중무장한 부대를 배치하여 수비할 필요가 있기에, 변경의 순찰은 교대를 위해 이동하는 부대에 의해 행해진다—— 「하지만, 공화국의 지리적 위치상, 변경엔 위협이 될만한 게 없어서, 교대를 위한 행군은 여행이랑 다름없죠. 그래서 다들 휴식으로 여기고 있어요.」 기사와 셰익스피어 선장의 말에 따르면, 이 세계에선 오직 잠수함만이 항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대양 한가운데엔 높이가 100미터가 넘는 파도들이 즐비한다고 한다——발키리가 살던 세계에선, 태풍이나 쓰나미가 와도 「고작」 20, 30미터 정도의 파도가 다이지만. 이 미지의 세계엔 아직도 숨겨진 비밀이 많다…… 하지만, 발키리의 최우선 목표는 「에테르 앵커」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 ……그리고, 두 번째론 성검의 보석들의 행방을 찾는 것. 아, 앞의 저 쇳덩이가 당신들의 「잠수함」인가요? 맞아요. 2만 리 이상 항해를 한, 위대한 「칼레도니아호」입니다!

주역:

리그(영어:League 프랑스어;Lieue 스페인어;Legua)는 고대 로마에서부터 내려온 단위로, 영어권 세계의 일반적 정의는 보통 3마일이나 3해리, 프랑스어권에서는 1만에서 1만 4천에 해당한다.

p.s. 쥘·베른의 『해저2만리』(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의 제목에도 이 단위가 쓰이고 있다.

대서양을 하루 만에 건넜다고요? 왜요, 기사 아가씨? 이집트로 잠깐 휴가라도 다녀오고 싶으신가요? 저희에게도 뭔가 이득이 될만한 게 있다면, 기꺼이 모셔드리도록 하죠! 아, 아뇨……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렇게나 빠른 배라면, 제가 바로 「와카 터널」로 안내해 드릴 수도 있을 거예요. ……어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신가요? 방금, 그곳이 당신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요새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하…… 우리 모두 「지하 대륙」의 적들과 맞서고 있는 만큼, 서로가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아는 게——그 무엇보다 기본적인 일 아닐까요? 틀린 말은 아닌데……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저희의 전투력을 먼저 보여달라고 부탁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요? 후훗, 우리 공화국까지 직접 찾아오실 정도인데, 그런 요구는 실례가 되겠죠. 그리고…… 이 배, 「칼레도니아호」의 엄청난 항속 속도만으로도, 충분히 전력이 될 것 같은데요? 흠…… A급 발키리의 능력을 너무 얕잡아보시는 것 같은데. 말씀드리지만, 평범한 수준의 붕괴수(Bêtes Honkai)라면 맨손으로도 쓰러뜨릴 수 있다고요! ……「붕괴」(Honkai)? 그 금기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으신 거죠? 네? 제가 설명을 안 드렸나요? 저희 세계에서 「발키리」는 「붕괴」와 싸우는 데 특화된 군인이에요! 저희는 다른 곳…… 음, 「평행 세계」에서 이곳에 왔으니까요! 잊지 마세요! 네…… 방금 당신들의 소개처럼…… 「붕괴」는 저희 대륙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보네요. 그렇다면——
여러분! 부디 제가 여러분과 동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자잠깐——왜, 왜 갑자기 무릎을 꿇으시는 거예요?! 「붕괴」는 괴물들만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의 몸까지 침식시키죠.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이 아닌 일반인들은, 이런 중장갑을 입어도 한 주 이상 싸우는 게 불가능해요. ——저희 군단이 정기적으로 부대를 교체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런 탓이죠. 더욱이, 실전에서——저 처럼 「잉카」라 불리는 「별을 이야기하는 자」가 아닌——평범한 병사들은 전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게 불가능해요. 만약 발키리들이 정말 저희 「별을 이야기하는 자」 이상으로 강하고, 붕괴수와 맞서는 데에 있어 전문가라면…… 부디 여러분을 공화국 의장과 요새 지휘관에게 소개할 수 있게 해주세요! 부탁해요! 다, 당연히 가능하죠! 일단 일어나요, 일어나서 말해요! 무릎까지 꿇으실 필요는 없잖아요! 저, 저희도 당연히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고요! 좋아, 한배에 탄 이상, 운명을 같이한 셈이겠네요. 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위도와 경도를 알려주세요. 아…… 네. 「서경」 1.5도, 「남위」 47.5도에요. 1.5도? 지금 우린 남아메리카에 있는데? 71.5도를 잘못 말한 거 아니에요? 아니…… 아니에요. 정말 1.5도예요. 이상하네…… 거긴 아무것도 없는 남대서양 한가운데인데? 아…… 롤랑 님, 「경도의 기준점」을 어디로 삼고 있나요? 「기준」이 어디냐고요? 당연히 기준점은 쿠스코 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경선 아닌가요? 뭐? 선장님, 아무래도 위도 경도 시스템이 저희랑은 다른 것 같아요. ……이거 내게 맹점이 있었을 줄이야. 그리니치 이외에 다른 곳을 기준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처음 들어보네. 하하…… 「그리니치」라…… 제겐 이곳이 처음 들어보는 곳이네요.

주역:

경도의 기준점은 「본초자오선」이라 하여, 이 점을 기준으로 서쪽과 동쪽으로 나눌 수 있다(180도에서 다시 이어진다). 이론상, 위도(적도)는 자전축에 고정되어 있는 달라질 수가 없는 반면, 본초자오선의 경우 어디든 될 수 있다. 역사상 여러 개의 본초자오선이 존재했다.

그리니치(Greenwich)는 15, 16세기의 영국 왕궁이 위치한 곳이다. 1675년, 이곳에 「왕립천문대」가 세워졌고, 1884년 국제 컨퍼런스에서 그리니치 천문대의 위치가 본초자오선으로 공식 확정돼, 「그리니치 평균시」가 영국 밖으로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1967년, 국제천문연맹에서 이 그리니치 평균시를 「세계표준시」로 공식화되었다.

좋아. 그럼, 정리됐네. 앨리스, 아직 듣고 있어? 계산 좀 해줘, 쿠스코 구시가지에서 서쪽으로 1.5도 떨어진 곳, 경도가 어떻게 돼? 으음——확인됐어요! 대도서관의 정보에 따르면 서경 73도가 되겠네요. ……세, 세상에, 이거 화상 통신 기술인가요? 저희 나라에선, 의장님처럼 높으신 분들만 쓰실 수 있는데! 어때요? 꽤 괜찮죠? 네! 요새 밖에서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에요! 당신들 정말 큰 도움이 될 거 같네요! 흠흠. 롤랑 소장, 그런 「과한」 칭찬은, 나중에 더 큰 「어색함」을 불러올 거 같은데요? 아, 네! 죄송합니다! 어라? 부오나로티 국장님? 다, 당신에 왜 여기에?! 어…… 방금 그녀를 뭐라 부르신 거예요? 그러게, 둘이 아는 사이 같은데? 롤랑, 그들에게 공화국에서의 제 공식 직함을 소개하도록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부오나로티 님께선 저희 공화국의 기술정보국 국장으로, 전 세계의 각 연구 기지에서 얻어낸 기술을 국내로 이전하는 임무를 맡고 계십니다. ……저기, 그, 그거 스파이 아닌가요? 칭찬 감사합니다, 아타지나 양. 대도서관, 알렉산드리아 항구, 피라미드 로켓 발사대——이런 연구 환경은 이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죠. 제겐 이곳이 이 세계에 더 큰 공헌을 할 수 있게 만들 의무가 있어요. 하, 하지만…… 당신은 대리 「시장」이잖아요! 시민들을 돌볼 책임이 있지 않나요?! 시민에게 있어서의 최대 이익은 안전입니다. 「붕괴 제국」에 저희가 굴복하게 된다면, 이 세계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되겠죠. ……게다가, 셸리 회장도 제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보고 있으니, 딱히 문제없겠죠? …… 맞는 말이야, 하지만 지금 갑자기 그 얘기를 꺼낼 줄은 전혀 몰랐군…… 당장 회장 대리를 맡고 있는데도, 그런 내막을 함부로 드러내다니…… ……「벽」의 위협이 사라지고 나면, 즉시 사퇴해 줘야겠어. 동기가 어떻든 간에, 자네의 이중 신분은 도시의 법률에 어긋나니까. 문제없어요. 그땐 사퇴뿐만 아니라, 알렉산드리아를 떠날 거니까요. 이럼 충분하겠죠? …… 자자, 셸리 여사가 불편해 보이니,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죠. 그래서…… 도서관장——아, 아니, 국장씨——그렇다는 건, 저희 「칼레도니아호」의 모든 움직임이 이미 공화국의 감시하에 있었다는 얘기인가요? ……공화국의 의미가 저와 공화국 의장에 한해서라면, 그런 셈이에요. 당시의 동향은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이외의 공화국 사람들은 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보증해드릴 수 있죠. ——당신과 함께하고 있는 롤란드 소장도 당신들이 올 거라 알고 만난 건 아니랍니다. 부디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진 말아주세요. 하하하, 롤랑 씨 같은 착한 사람을, 저희가 어떻게 난처하게 둘 수 있겠어요? 그보다 이왕 나오신 김에, 그 「와카 터널」이라는 게 뭔지 한 번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죠. 정말 지구의 중심을 통과하는 건가요? 어떻게 한 거예요? 네, 통과하고 있어요. 원리를 말씀드리려면…… 우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네요. 일단 「지구 구형설」부터 다루도록 하죠. ……그게 무슨 뜻이죠? 직관적으로 봐도,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반례는 충분히 많아요. 원시 시대의 항해 민족들은 남과 북의 별자리의 차이를 통해 「천구」의 존재를 추측하였고, 이에 하늘과 평행히 펼쳐진 땅(地) 역시 구(球)형으로, 즉 「지구(地球)」로서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죠. 물론, 빈틈이 많은 추리이긴 해요. 「평평하지 않다」가 「구형이다」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으니까요. 그 시대의 항해 민족들은 「별의 흐름」과 「천지의 평행」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관측해냈죠. 전자의 경우, 「하늘과 땅은 연속해서 상대적으로 움직인다」라는 확실한 결론을 얻을 수 있지만, 후자를 통해 「하늘과 땅 모두 구형이다」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건 불가능했어요. 이유야 간단해요. 그들은 전 세계를 다 돌아보지 못했으니까요. 어느 누구도 「지구」가 이런 간단한 기하학 구조를 가졌을 거라 특정할 수 없었죠. 아직 가보지 못한 어딘가에, 땅이 이상하게 말려있다거나, 접혀있는 구조가 있을 수도 있고, 바다를 나가도 거센 파도 탓에 정확한 위도와 경도를 파악하기도 어려웠죠. 황당한 생각이네요. 어떻게 지구가 그렇게 복잡한 형태를 자연적으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어떤 형태보다도 안정적인 게 구형인데, 당연한 거 아닌가요? 아뇨, 선장. 제가 보기에 국장이 하려는 얘기는—— ——우리가 있는 이 세계가, 꼭 자연적으로 형성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 그녀의 추리는 정말 합리적이네요, 선장님. 이 세계는 본래 「에테르 앵커」에 의해 역으로 구축된——인조품, 즉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사람들이 세계지도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세계지도는 워낙 크기에, 지도 제작자 여럿에게 각각의 구역을 맡겨 그릴 필요가 있죠. 하지만, 지면은 「세계」라는 규모에서 보면 단순히 가로 세로로 이루어진 평면이 아니었어요. 이에, 지도 제작자들은 명확한 규칙을 정할 필요가 있었어요. 각각의 지도 제작자에게 맡겨진 영역에 겹치는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해당 지도 제작사들 간에 그 공통되는 부분의 규칙을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라고요. 이런 조건 하에, 부분적인 지도들이 한 장의 종이에 모일 수 있게 되었고, 다시 이 종이들이 모여 하나의 도감이 될 수 있었죠.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바로 그런 도감 속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대양 사이의 거센 파도들은 종이의 경계, 여러분들이 이용하는 「고속 해류」는 종이의 결이 되는 섬유질이라 할 수 있겠죠. 어떻게 보면, 「웜홀」이라 할 수도 있을까요? 여기서 「와카 터널」은, 그 땅들을 관통해 하나로 엮는 「봉합실」, 마치 책을 엮는데 쓰이는 접착제 혹은 책등과도 같은 거죠. 엄밀히 말하면, 「와카 터널」은 지구를 관통하는 게 아니라, 「지구 자체가 와카 터널로 되어있다」라고 하는 게 맞아요. ——그리고, 「책등」이든 각각의 「페이지」든, 모두 누군가의 의지를 통해 만들어진 「인조품」이 되겠고요. ……여기서 질문 하나 해도 되냐는 것이에요. 언제든지요, 질문은 환영이에요. 양자의 바다에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려면 천문학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영리한 방식으로 「불필요한 영역」을 「접어서」 처리한다 해도, 「접혀진 세계」 역시도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것이에요. 대체 누가 이런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이에요? 대체 무엇이 목적이라는 것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모든 목적을 이해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대도서관의 정보에 따르면, 「누가 그랬을지」는 어느 정도 특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asatela bahidalaki jhyurhi-kavina」—— ——이런 혀가 꼬이는 단어, 슈뢰딩거 박사님도 들어보신 적 있죠? …… 그건 「ⵀⵤⴺⵚⴽ ⴳⴶⴱⴹⴽⴸⴱ ⵥⵛⵌⴱ-ⴸⵖⴱⵎ」로…… 쓰인다는 것이에요. 네, 박사님은 이 언어의 철자까지도 익숙하신가 보군요. ……음,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그럼 대체 이게 무슨 뜻이에요? 무슨 암호 같은 건가요? 하하…… 「암호」라, 이 이질적인 언어라면, 그렇게 표현하는 것도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이에요. 이 장황한 구문의 뜻을 우리의 언어로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면 매우 시적인 의미를 가진 이름이 된다는 것이에요—— ——「월광왕좌」. ……! ……리타 양은 이 이름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인상이라는 것이에요. 저희에게도 알려줄 수 있냐는 것이에요. …… 제가 아는 바로는, 「월광왕좌」는 대 붕괴능 대량살상무기에요. 네겐트로피의 거대 작전 병기 「아라하토」에 탑재된 주포이기도 하죠. ……이 무기는 자칭 「아인슈타인」과 「테슬라」라는 두 명의 「집행자」에 의해 지휘된다고 합니다. ……하아, 천명이 그렇게 가르치냐는 것이에요? 그나저나 그 사람들 이름 짓는 감각이 꽤 괜찮다는 것이에요. 「네겐트로피」라든가 「아라하토」라든가…… 하하하하 ……하지만, 「집행자」라는 직함은 너무 평범하다는 것이에요. 그런 무미건조한 이름은 분명 아인슈타인이 붙였을 거 같다는 것이에요. ……? 그냥 옛 추억이 떠올랐다는 것이에요. 그럼 다시 본론에 들어가겠다는 것이에요. 엄밀하게 말해서, 「월광왕좌」는 무기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건 단지 에너지를 전환하는 장치일 뿐이라는 것이에요. 붕괴 에너지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일반적인 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인류는 전 문명이 멸망하기 직전에 이 기술을 얻어냈지만, 당시 그들에겐 그것을 발전시키기엔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이에요. 만약 그 당시의 산업 규모로 인류에게 십 년 정도의 시간만 더 있었다면, 대량 생산된 「월광왕좌」로 지구의 모든 붕괴능을 충분히 흡수시킬 수 있었을 거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ⵀⵤⴺⵚⴽ ⴳⴶⴱⴹⴽⴸⴱ ⵥⵛⵌⴱ-ⴸⵖⴱⵎ」, 이건 그 당시——5만 년 전에——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거기 「국장」 겸 「도서관장」 님——「ⵀⵤⴺⵚⴽ ⴳⴶⴱⴹⴽⴸⴱ ⵥⵛⵌⴱ-ⴸⵖⴱⵎ」과 「와카 터널」엔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이에요? 와카 터널은 그저 통칭이에요. 앞서 당신이 말한 전 문명에서는 이렇게 불렀죠. 「ⵚⴺⵚⵇ ⵛⴺⵋⴱ」(etera jutashi), 이른 바 「에테르 앵커」 그 자체에요. 그 땅속을 가로지르는 터널이…… 「에테르 앵커」 그 자체라고요? 맞아요. 당시의 문명은 이미 「작은 우주」를 만드는 기술까지 가지고 있는 듯했어요—— 자료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모두 인위적으로 「에테르 앵커」로 확장된 것이죠. 이는 여러 「거품 우주」의 사이에 끼인 이곳이 위기에 처한 이유이기도 해요. 그것의 에너지원——그 유사 「월광왕좌」 프로토타입이라는 것이에요? 처음엔 그랬죠. 「막」이 에테르 앵커를 통해 안정적으로 「다양체」를 형성하게 되면, 이를 둘러싸는 거품 우주들을 통해 붕괴능을 흡수하여 더 성장할 수 있어요. 피라미드, 대륙의 형태, 그리고 저 별들이 가득해 보이는 하늘을 감싼 장막까지도——모두 이렇게 「성장」해 온 것들이에요. 잠깐…… 그렇다는 건, 원래 목적은 「작은 거품 우주」를 만드는 게 아니라, 붕괴능을 옮기려는 수단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들이 이곳을 만든 원래 목적은 그저 「우주 쓰레기장」이었다는 것이에요? 네, 그렇게 추측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 해도——「원본」 세계에 비하면 이곳의 「크기」는 정말 보잘것없어요. 이렇게 얘기하면 이해하기 쉬우려나요. 「에테르 앵커」를 사용해 「작은 우주」하나를 만드는 데엔, 겨우 이전 기록의 「제1 율자」나 「제2 율자」가 가진 에너지양 정도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이후에 등장하는 율자들이 다루는 붕괴능의 양은 이를 한참이나 넘어섰죠…… 이는 분명 그들에게 있어선 실패한 시도에 불과했을 거예요. 그렇게, 그 시도는 저희에게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남겨주게 되었지만, 동시에 숨겨진 큰 위험도 함께 남겼죠. 그 전설 속의 「나폴레옹」——제 생각엔, 바로 그가 그 숨겨진 위험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도록 한 핵심 인물이라고 봐요. 하지만…… 현실과 전설은 많이 다르죠. 롤랑, 이들에게 공화국의 적이 어떤 존재들인지 설명해주세요. 공화국이 건국된 첫날부터, 공화국은 줄곧 적들과 끊임없는 소모전을 계속해왔어요. 우리 쪽엔 기술 병기, 이른바 「별을 이야기하는 자」가 있고, 적은 붕괴수들과 지휘의 극에 다다른 지휘관이 있죠. 이 붕괴수들은 동시에 수백, 수천 개의 소규모 분대로 움직이며, 모든 목표를 매우 정확히 타격하죠. 그들의 진퇴 역시도 너무나도 유연해, 마치 하늘 위에 보이지 않는 눈이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우리가 전장에 새로운 병기 투입할 때마다, 적들은 자신의 전술적 우위를 이용해 곧 이를 무력화시켰죠. 그렇게 매번 공세가 막히고 나면, 저흰 그저 요새를 사수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적어도 「와카 터널」이 적에게 함락되지 않는 한, 그 뒤로 펼쳐진 공화국의 영토는 안전하게 남아있겠죠. 하지만, 요새가 함락되고 만다면, 적들은 그 터널을 통해 세계 구석구석을 침공하게 될 거예요. 처음엔 공화국도 이들과 협상을 해보려 했어요. 하지만 첫 번째 문제에서부터 막히고 말았죠—— ——저흰 그 적들이 어떤 나라에서 왔는지, 지휘관이 누군지 전혀 알지 못했어요. 저희들이 유일하게 알던 건, 저 붕괴수들 뒤로 뭔가 「관리자」 같은 게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것. 그래서 저흰 적의 영토에 「별을 이야기하는 자」로 구성된 「사절탐험대」를 파견했습니다. 하지만, 적진 깊숙이 수천 리나 나아가도, 연락을 취해볼만한 목표를 찾는 건 불가능했어요. 저희가 적의 영토에서 알게 된 건, 그곳의 중심에 에너지 벽이 높게 드러서있다는 것과, 붕괴수들이 매번 그 벽 너머에서 나와 우리 요새로 향한다는 것이었죠. 이런…… ……그 「나폴레옹」이 괴물로 변한 후, 그의 주변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거 하나 없는 분위기네. 어쩌면 그 자신도 완전히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 롤랑 씨,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어요. 여쭤봐도 될까요? 네? 그렇게까지 공손해하실 필요는…… 뭐가 궁금하신가요? 괜찮아요,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리타는 누구에게나 과하게 공손하니까요. 처음엔 조금 무섭게까지 느껴지실 수도 있는데, 같이 지내다 보면, 딱히 악의 같은 게 없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아, 맞다. 리타, 뭘 물어보려 한 거야? 별거 아니긴 한데, 그냥 단어 하나에요. 롤랑 씨, 「별을 이야기하는 자」는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어라? 모르셨어요? 흠…… 간단히 말해, 저나 당신처럼 다른 세계에서 와, 선천적으로 붕괴능에 강한 저항을 지닌 사람들을 뜻해요. 그, 그럼, 왜 듀라는 당신을 기억하는데, 당신은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거죠?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아마도 그건 제가 이곳에 오기 전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 다른 세계에서 무언갈 경험했다 해도…… 지금의 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겠죠, 그렇지 않나요? 결국, 철학자들의 말처럼, 인간은 과거를 바꿀 수도 없고, 미래를 미리 경험할 수도 없으니——누구나 「현재」를 살아갈 수 밖에 없죠. 아…… 제가 너무 진지하게 답했나요? 음…… 나중에 제가 은퇴하고 나서, 그 「미치광이 롤랑」이 무슨 일을 했는지 좀 알아봐야겠네요. 하지만, 지금은 공화국의 군인으로서, 아직은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시계태엽 오렌지』 같은 일이 일어날까 걱정돼서…… 죄송해요! 살짝 어색하고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외부로부터의 신호는 점점 왜곡되다 결국 완전히 끊어졌다. 이는 「칼레도니아호」가 라디오 전파가 잡히지 않는 심해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롤랑은 호기심이 발동해 잠수함의 이런저런 기계를 살펴보거나, 리타의 요리 솜씨에 극찬을 하곤 했다. 게다가 듀라의 기분을 풀어주려, 이런저런 농담을 하거나, 공화국에서 유행하는 유머 등을 알려줬다. 그녀는 정말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엔 조금도 아쉬움이 없는 듯했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처럼. ……비앙카는 그런 그녀가 조금 부러워졌다. 이튿날—— 우와, 여기 정말 남미 맞아? 경치가 완전 알프스 같은데! 여기는 남위 47도니까요! 알프스 북부 취리히가 위치한 위도와 별 차이 없죠. 에——엣취! ……외투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여기 정말 추워 죽겠네요. 으…… 당신이란 사람은 요만큼도 낭만적이지 않네요. 「와카 터널」로 향하는 입구는 바로 여기 협만 맞은편의 골짜기에 있어요. 근데…… ……그전에,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 엄숙해 보이는 건물의 한 켠에, 군인은 갑옷을 벗어두었다. 초가을의 야생화들은, 그녀의 손에서 점차 화환이 되어갔다. 「우리 방랑자는, 언제나 더욱더 고독한 길을 찾아 나선다. 하루를 마친 곳에서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일 없고, 해가 지는 걸 본 곳에서 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일 없다.」 「심지어 대지가 잠든 사이에도,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우리는 끈질긴 생명의 씨앗으로, 바람을 타고 흩어질 때에 우리의 가슴은, 이미 성숙함과 충만함으로 가득하다.」

주역:

레바논의 문호, 칼릴 지브란(Gibran Khalil Gibran)의 예언자(The Prophet)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