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 전—— 우와! 아름다운 바다, 아름다운 하늘! 일만 없으면, 여기 해변가에 누워서 오후의 태양이나 좀 즐겼을 건데. 셰익스피어 선장…… 우리가 여기에 상륙한 건, 저 멀리 연기가 보였기 때문인가요? 맞아요. 보급이랑 가이드가 필요하니까요. 그중에 더 중요한 건 가이드고요. 그러고 보니, 여긴 알렉산드리아가 아니니까, 영어 할 줄 아는 사람도 별로 없겠네요. 우선 다들 모여서 확인을 좀 하죠——다들 어떤 언어가 가능한가요? ……야. 선장이라면, 적어도 선원들이 뭘 할 줄 아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아, 난 말이 안 통하는 건 별문제가 아니라 생각했거든——물론 이제 문제가 된다는 걸 알았으니, 겸사겸사 물어보면 되지. 비록 나는 영어랑 라틴어 밖에 못하지만…… 너희 발키리들은 여러 언어가 가능한 것 같은데, 그렇지? 흥.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이 몸은 4개가 겨우려나? 메이드 양은? ……옅고 넓게 세계 중의 주요한 열몇 가지 언어가 구사 가능하지만, 이 「신대륙」 탐험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자……잠깐만, 기다려봐. 「세계 중의 주요한 열몇 가지 언어」?…… 그럼, 일본어도 할 수 있어? 물론이죠. 「古池や 蛙飛び込む 水の音」

주역:

오래된 연못, 뛰어드는 개구리, 첨벙이는 소리

——마츠오 바쇼(에도 시대)

그럼…… 중국어는? 「一曲新词酒一杯,去年天气旧亭台。夕阳西下几时回?」

주역:

새로이 곡 하나를 읊을 때마다 한 잔씩 더 들이킨다, 작년과 같은 날씨의 정자에서. 서쪽으로 지는 해는 언제 다시 돌아오려나?

——『완계사』 안수 (송나라)

그, 그럼…… 스페인어는? 「Cuando una puerta se cierra, otra se abre.」

주역: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돈키호테』 제 1장 21절

……진, 진짜잖아? 하하하, 마지막 문장은, 내가 썼던 문장인데! 네, 세르반테스 선생님, 당신이 쓰신 『돈·키호테』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그럼 스페인에서 온 아저씨, 아저씨는 다른 특별한 언어 할 줄 아는 거 있어? 음…… 「특별한 언어」라…… 거기에 아랍어는 아니겠고…… 다들 하는 유럽 쪽 언어도, 아닐 거고…… 미안하구먼, 이러면 아무것도 없네. 흠…… 라일라랑 슈뢰딩거 박사는 배를 지켜야 하니…… 아. 그래, 샹폴리옹 씨, 고고학자로서, 신대륙의 「원시」 언어 중에 혹시 아는 거 있나요? ……미안해요, 이집트의 콥트어만 연구해 봐서. 하하하, 그러고 보니, 지금까진 고대 이집트에 대해서만 연구하셨죠! 괜찮아요! 일단은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선두에 서도록 하죠—— 신에게 기도드리기 딱이니! ……저기, 그게 무슨 논리야? ……하하, 「왕은 스페인어로 신과 대화한다」를 따라 한 거 아닌가?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좋아요, 그럼 출발하죠—— 연기가 보이는 곳을 향해서! (……잠깐, 대체 무슨 얘기가 오고 간 거야? 왜 나만 모르는 거지?)

주역:

「나는 신과 대화할때는 스페인어를, 여자를 희롱할 때는 이탈리아어를, 신사와는 프랑스어를, 말을 조련할 때는 독일어를 사용한다.」

——카를 5세 (스페인의 국왕,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어ーー이!누구 없어요ーーーー오! ……있으면, 뭐라 말 좀 해봐요ーーーー! 이상하네…… 아무도 없잖아…… ……잠깐, 저기 누가 숲에서 뛰어오는 것 같은데. 거기 아가씨! 스페인어 할 줄 아나? …… 당신들…… 연방에서 온 건가요?! 근데 옷이…… ……연방? 무슨 얘기지? 여기 나라 이름이 어떻게 되는 거요? 멕시코? ……어라? 당신들…… 연방이 뭔지 모르나요? 하지만…… 당신들이 하는 말은…… 분명 「연방표준어」잖아요? …………응? 내가 쓰는 언어는 분명 「스페인어」인데. 「연방표준어」라고? 그것참 이상한 이름이구먼. ……? ……아! 알겠어요! 당신들 「표류자」군요? 연방의 「대사제」처럼, 다른 세계에서 오셨나 봐요! 음…… 대충 맞는 소리인 거 같은데? ——잘됐네요! 신통하신 표류자님! 갑자기 부탁해서 죄송하지만—— 연방의 군대가 저희 마을을 공격하려 해서,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뭐? 저, 저는 마을의 「예언자」로, 이 땅의 수호신 「익스·타브」의 「화신」입니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후에, 무슨 일이든 도와드리겠습니다! 현재—— 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서로 말이 안 통하니 불편하네요. 제가 비앙카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통역하는 게 낫겠어요. 「너희의 고향으로 꺼져라, 다시는 이 마을을 침입할 생각 마라!」 ——이상입니다. 너, 너희들…… 감히 신성한 연방군을 모욕하다니, 네, 네 녀석들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흥분하지마라, 형제 차크하. 잊었나? 우리의 목적은 이들을 계몽시키기 위한 것이다. 야만적인 행동은 삼가시게. …… 웃기시네. 인류 역사에 그런 명분으로 도적질했던 녀석들이 한둘인 줄 알아? 리타, 장갑 좀 가져다줘. 네, 비앙카 님. 자기들이 정의라면서, 약자를 괴롭히는 녀석들에겐…… ……발키리의 힘을 보여줄 수밖에. 그럼—— 뭐——엇! 으아아아악—— ——어디서 왔든 상관없으니까, 얼른 꺼져버려! 아아아! 신이시여! 신이 보호하신다! 당신은 분명 전쟁의 신 「브루크·차브탄」의 화신, 저흴 구하러 오셨군요! ……? (비앙카 님을 전쟁의 신의 화신이라 여겨, 자신들을 구하러 왔다고 말하고 있어요.) (……음, 그, 그건 좀 부끄러운데. 이어서 통역 부탁할게, 리타.) ……아, 죄송합니다. 제가 노망이 든 나머지, 자기소개를 잊었군요. 이 마을은 「이잣·위닉」, 바깥사람들에겐 「엘·레이」라고 불리고 있고, 이 늙은 저는 타수마르, 이곳의 촌장입니다. 여긴 제 손녀, 이코넬, 저희 마을의 수호신 「익스·타브」의 화신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저는 비앙카, 여기는 선장 셰익스피어, 그리고 메이드 리타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타수마르 님, 이코넬 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니, 님이라뇨…… 그렇게 부르실 필요는 없어요. 전 그저 수도자에 불과해요. 하하,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리타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요. 아——그렇지! 모두들 멀리서 오셨을 거니, 따뜻한 음식을 대접해야겠네요. 방금 옥수수를 갈아 만든 토르티야는 어떠신가요? 오오, 그 소문으로만 들어본 「타코」인가? 어이쿠, 들어본 적 있으시나 보군요. 그럼 더욱이 제가 직접 만들어드려야겠네요. 원조의 맛을 제대로 느끼실 수 있도록. 하하하하, 벌써부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려 하는군요! 이코넬, 부디 이분들과 얘기하고 있거라, 나는 불을 준비하도록 하마! 알겠어요, 할머니! 저도 바다 건너엔 무엇이 있는지 무지 궁금했거든요! ……기계랑, 로봇으로 도시를 관리한다고요? 네, 부지런히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도와주는? 흠, 신화 같은 데서 나오는 신의 「하수인」같은 거랄까요. ……물론, 이런 기술들이 위험을 초래하기도 하지만요. 어쩌면…… 이집트의 신을 화나게 해서 그런 건가요? 로봇이 있으니, 더 이상 신에 의존하지 않게 돼서? 아뇨, 아뇨,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인간이 신으로부터 스스로 「젖을 떼었다」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요? 어떤 엄마가 아이가 젖을 뗐다고 화를 내겠어요? ……아, 그런 해석도 가능하군요. ……훗. 저기! 왜 또 갑자기 웃는 거야, 리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비앙카 님과 이코넬 님이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요. …… 너, 너, 대체 무슨 바보 같은 소릴 하는 거야! (이코넬 님, 비앙카 님이 수줍어할 때 정말 귀엽지 않나요?) (……아하하하, 리타 님은 정말 비앙카 님의 친언니 같네요.) 야! 너희들끼리만 웃지 말라고! (리타, 내가 하는 말 제대로 번역하고 있는 거 맞지?) 이코넬, 이리 오렴! 첫 요리가 준비되었단다. 네, 지금 갈게요! 아! 정말 푸짐하네! 오, 이 정도면 알렉산드리아에서 그 「타이어 회사」가 추천하는 가게들 수준은 충분히 넘겠는데? 그, 그럼, 잘 먹겠습니다! 으악! 매워! 비앙카님? ……괘, 괜찮으신가요? 다, 당연하죠! 발키리는 칠리 따위에 지지 않는다고요! 여기 타코 정말 맛있네요! 살코기에, 비계에, 토마토가 딱 알맞게 구워지니! 방금 소란은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갑자기 매운 걸 먹어서 그런 거예요! 진짜 괜찮아요! 어라…… 우리들의 입맛을 고려해서, 오히려 칠리를 적게 넣은 것 같은데…… 시, 신경쓰지마! 바보 선장! 네 걱정은 필요 없다고! ……그래? 그럼 촌장 할머니에게 다음 요리엔 칠리를 잔뜩 넣어달라고 부탁해야겠네. 야, 야——잠깐만! 하하, 더는 못 먹겠다, 더 먹었다간 배가 터져버릴 거야! ……돼지 선장, 다 합쳐서 2파운드도 넘게 먹은 거 같은데? 괜찮아요, 내일부터 열흘간 중요한 축제가 열리니까요. 맛있는 요리를 즐기실 기회는 충분히 많아요. 축제를 연속으로 열흘이나 해요? 음. 오늘은 12.19.19.17.18이고——내일이 되면, 13.0.0.0.0가 되어서, 새로운 「박툰」을 맞이하거든요. 「박툰」? ——아, 들어본 적 있습니다. 「박툰」은 「마야력」의 단위로, 그레고리력으로 따지면 대략 400년쯤 될 거예요. 그러니 이날은, 우리로 따지면 「신세기」랑 비슷하려나요…… 아니, 「새 천년」에 더 가깝겠군요. 이코넬 양, 10일 동안이나 축제가 이어진다고 하셨는데——각 날마다 뭔가 중요한 종교적인 의식이 있는 건가요? 아, 그렇진 않아요.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하는 「신탁」을 받는 의식 이외에 다른 제사는 없어요. 저희의 신앙은 연방 사람들과는 달라서, 「각자가 신과 직접 얘기를 나누는」 건 하지 않아요. ……명상 등을 통해 마음속으로 신에게 얘기하는 것도 안된다는 건가요? 본인이 욕망을 가졌다면 불가능해요. 신들은 제멋대로인지라, 섣불리 신들에게 질문이나 뭔가를 요구했다간, 오히려 불운을 더 불러오게 되니까요. …… 솔직하게 말해서…… 저는 잘…… 이해가 안 되네요. 원래부터 신념은 이성적이지 않아. 네가 고를 수 있는 건, 「이해하느냐」 「못 하느냐」가 아니라, 「믿느냐」 「안 믿느냐」뿐이니까. ……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런 이상한 신념 또한 이 마을의 독특한 「휴머니즘」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 「휴…머…니…즘…」? 그건…… 무슨 뜻인가요? 아, 곤란한걸. 이런 건…… 한두 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려운데…… 거기 고고학 선생, 뭔가 쉽게 설명할 방법 없어요? 음…… 제 생각에는…… 간단히 말해, 모두의 「가치관」과 「인격」을 가능한 존중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의 첫 두 문장——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 「이 권리란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의 저항 등이다.」 ……? 뭐, 그러니까, 여러분이 축제랑 제사를 완전히 분리한 것 처럼—— 이른바 「휴머니즘」은, 할 수 있는 한 모두가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이런 기준에서 보면, 이코넬 양 같은 성직자들이, 사람들에게 신앙과, 자신들의 규율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겠죠. 아, 이해한 것 같아요. 「익스·타브」의 화신으로서,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 그의 희로애락을 받아들이는 건, 저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에요. 그러니 저는 다른 사람이 이 신과 소통해야 하는 위험에 빠지게 놔둘 수 없어요——그게 바로 제게 주어진 일이니까요. ……그렇군요. 음, 일반인들이 신에게 받는 영향을 최소화시키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겠죠. 다들 결국은 자라나는 아이들과 같으니까요. 언젠가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전지전능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고, 결국 그땐 모든 걸 자기 자신에 의지할 수밖에 없죠. ——신들도 결국 그런 부모들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창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어요. 이것은 하나의 사람, 하나의 민족으로서 진정한 성인이 되었다는 상징이니까요. ——그에 대한 증명으로, 이미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오고 있죠. 완전한 자유와 함께요. 자유…… 라 그럼, 오늘 밤의 신탁엔, 「자유」를 주제로 다뤄봐야겠어요! 네? 아직 저희 마을은, 귀인분들의 보호 덕에 독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저는 믿고 있어요, 언젠가는 마을 사람들과 연방의 사람들이, 희생없이 자유롭게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 ……오후가 되면, 신탁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해요. 내일…… 만약 모든 게 잘 풀린다면…… 저도 당신의 여정에 동참해도 될까요? 저도 이 마을을, 이 반도를 벗어나, 바깥 세계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고 싶어요! 하하하, 물론 문제없죠! ——당신이 원한다면 지금 당장도 떠날 수 있는데, 어때요? 「익스·타브」의 저주를 받아도 상관 없으신가요? 음, 상관없겠죠?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오히려 당신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저주받았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선장님, 그건——) (괜찮아, 그대로 통역해줘.) 선장님은 저주가 두렵지 않다고 하십니다. 단지, 지금 바로 떠나실 경우, 이 마을에 닥칠 문제에 대해—— ——바로 당신의 신앙이라는 책임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는가를 물어보시네요. …… (저기! 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거야! 갑자기 분위기가 얼어붙었잖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비앙카 양. 어라? 여…… 영어 할 줄 아세요? 아뇨,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절 걱정하고 있는 건 잘 알겠어요. 고마워요. 아…… 별, 별거 아니에요…… 셰익스피어 선장님 말이 맞아요. 저는 신의 화신…… 저의 미래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마쳐야만 해요.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제가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겠죠. …… ……미안해요, 제가 주제를 더 무겁게 만들었네요. 하지만, 연방 장군이 말한 걸 기억하시나요? 그의 말 중에 하나는 맞아요——그들의 신과는 달리, 저희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고대 신들은 확실히 피에 굶주렸고, 잔혹하니까요. …… 태양신 「키니치·아하우」과 옥수수신 「훈·후나프」에게 풍요를 청하려면 모든 이들이 피를 흘리는 의식을 집행해야만 하죠. 죽음의 신 「키신」은, 치유할 수 없는 피부병을 가진 사람만이 그의 사제가 될 수 있다고 여겨요. 비의 신 「착」은 힘이 부족할 때, 활발한 남자아이 하나를 바쳐야만이 그 힘을 회복할 수 있어요. 저희 마을의 수호신인 「익스·타브」 역시 난산모와 자살한 이들을 돌보는 부드러운 여신이지만, 혀를 밧줄로 꿰는 의식을 필요로 하죠. 그…… 그건 말도 안 돼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는 잘 알겠어요, 비앙카 양. 이게 바로 연방의 사람들이 저희를 야만스럽고, 잔인하다고 비난하는 근본적인 이유니까요. 실례지만, 제가 보기엔 그저 영토를 확장하려는 핑계에 불과해 보였는데. ……하지만, 이는 분명 그들 병사들의 우리의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죠, 아닌가요? 고통을 덜어주든, 더 이상 비난받지 않게 해주든—— 저는 신들이 저희 같은 미천한 범인들이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허락해 주길 바라요. 잠깐만요—— 이건 그냥 스스로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거 아닌가요? 「신」이란 건 결국, 사람의 영혼과 의지의 승화를 통해 의미를 가지니까요. …… 네,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그렇기에…… 오늘 밤의 의식은 더욱 중요해요. 「한 시대가 끝나는 마지막 날」의 의식은 400년마다 한 번씩만 이뤄지기에—— 이 기회를 잡아야, 신들이 이 세상에 남겨둔 잔재들을 한꺼번에 바꿔버릴 수 있겠죠. …… 저희 마을에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연방 사람들을 쫓아내주셨을 뿐만 아니라—— ——제가 신들에게 변화를 요구할 결심을 굳히게 해주셨으니까요. 그러니까……정말, 정말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깃털 장식을 한 아가씨는 동굴에 들어갔고, 그러고 보니, 발키리 둘은 어디로 갔죠? 아가씨들은 그녀가 자학 의식을 준비하는 걸 보고 싶지도, 그렇다고 딱히 방해할 이유도 찾지 못했는지, 먼저 배로 돌아갔다네. 뭐 딱히 할 말이 많지는 않지만——이곳의 풍습은 정말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군. ……저도 좀 걱정되네요. 그 아가씨가 어떤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지. ……어리석은? 아마 비밀로 하고 있겠지만, 대부분 이런 의식에는 환각제가 쓰이죠. 고통을 없애고 열광에 빠지게 하는. ……그녀의 열의를 생각하면, 오직 신만이 그 결말을 아시겠죠. 그 「신비로움」과 「신성함」을 지키려면, 분명 그럴 필요가 있겠지. 하지만, 이성적인 면에서 보면, 신을 믿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런 이단 신앙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네. 하하하! 할아버지 정말 뼛속까지 「스페인」 사람이네요! 음? ……꼭 스페인 사람만 이렇게 느낄까? 네?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네, 아마 다른 이교도들이나 무신론자들도 나와 같은 스페인 사람을 이런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예수란 무엇인가? 예수는 신의 화신으로, 「삼위일체」의 한 축을 맡고 있지. ——만약 신이 존재하든, 아니든, 결국 나의 처지도 그 아가씨와 별반 다를 거 없어 보이네. 그래서, 예수가 무엇을 하였나? 우리 범인들의 원죄를 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지.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생각하면, 그가 십자가에 꿰뚫리는 선택을 한 것이나, 이곳에서 행해지는 피의 제사나 별 차이 없어 보인다네. 그리고 나와 같은 종교를 믿는 자가 아니라면, 그의 신성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들 입장에서 보면, 예수는 그저 완고하고, 진부한, 이상한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까? ……흠. 어이쿠, 만약 원래 살던 세계의 스페인이었다면, 「이런」 표현은 절대 꺼낼 수 없었겠지. ——하지만 이 세계는 다르군, 우리들 뿐만 아니라, 구대륙의 사람 대부분도 딱히 신경쓰지 않아. 애초에 그 「벽」이 세워진 지 이미 100년이 넘게 지났으니까요. 그런 광적인 이들은 이미 벽에 「집어삼켜지고」 말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오지에는 여전히 광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이 많죠. 그렇다고 우리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만요. 그러니, 내일 동굴에서 그 아가씨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의 일에 집중합시다. 예를 들어—— ——여긴 옥수수빵이 정말 맛있으니, 더 사 먹는다던가! 석양이 진다. 별빛이 밝아진다. 잠수함 「칼레도니아호」 안에서, 비앙카는 초조하고 불안한 12시간을 보냈다. 무기 정비를 하든, 스페인어를 배우든, 카드 놀이를 하든, 그녀는 도저히 어느 것에도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이런 불편한 느낌은 그녀가 첫 임무를 기다리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 그녀는 선봉이 아니었던지라, 1년처럼 느껴지는 15분을 헬리콥터에서 대기해야 했다. 앞으로는 아그라 요새, 뒤로는 타지마할이라는 인류 문명의 귀중한 자산들을 반드시 지켜내는 것이 이번 작전의 임무였다.

주역:

아그라 요새(힌디어: आगरा क़िला, 우르드어: آگرہ قلعہ‬‎‎)인도 무굴제국의 황궁으로 바부르, 후마윤, 악바르, 자한기르, 샤 자한, 아우랑제브 순으로 6대간 이어졌다.

그 유명한 타지마할은 아그라 요새에서 남동쪽으로 2.5km 거리에 있으며 샤 자한이 그의 아내 무타치 마하를 위해 세웠다. 말년에 샤 자한은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사로잡혀 아그라 요새에 감금되었다. 이후 여생의 마지막 8년간, 그는 그저 그곳에서 멀리 보이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게 다였다.

이에, 선봉의 발키리들은 성의 정원에서 붕괴수를 유인해, 성이 받는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그 사이에 비앙카가 속한 후속 부대가 야무나 강을 따라 포위망을 구축해, 선봉대를 도와 적을 섬멸하려는 계획이 세워졌다. 이렇게 계획대로 일이 진행됐으면 좋았겠지만——
비앙카 님, 「엘·레이」 마을의 타수마르 님이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소녀의 회상은 메이드의 호출로 끊겼다. 날…… 찾아? 네, 당신을 직접 호명하고 계셨어요. 전쟁의 신 「브루크·차브탄」의 화신이시여! 고통받는 영혼의 인도자 「익스·타브」의 화신이 의식의 완성을 도와달라고 당신을 초청하였나이다. ……? 이코넬 님이 비앙카 님을 초대하셨습니다. 그녀의 의식을 완성시키기 위해 바앙카 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네요. 당신을 정말 화신이라 여기나 봐요. …… 이건 여신 「익스·타브」께서 내리는 신탁이라——그렇기에 같은 화신인 당신만이 제 손녀를 도와 의식을 완성시키실 수 있나이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 알았어요. 주민들에게 신성시되는 이 동굴은, 촛불로 가득 차 있었다. 촌장은 아무 말 없이 비앙카를 깊은 곳으로 인도하였다——이곳에선 그녀처럼 높은 지위를 가진 이라도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그건 「신의 화신」만이 가진 특권이기에. 흐릿한 불빛이 조용히 일렁인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종종 우윳빛의 담황색 석순 위로 튀긴다. 이는 어렴풋이, 발키리의 손끝에서 뚝뚝 떨어져내리던 핏물처럼 보였다. ——비앙카가 발키리로서 참가한 첫 임무. ——그 임무에서, 살아남은 건 오직 비앙카뿐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이 다르다는 걸 인식했다. 단순한 운이 아니었다. 천부적인 재능도 아니었다. 그녀는 점점 깨달아갔다. 일반인에게는 각각의 분야마다 보이지 않는 「천장」 같은 게 있어, 그들이 무슨 노력을 해도 그 한계를 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전투라는 분야에서, 그녀는 노력하는 만큼 그대로 실력이 늘어났다. 그녀의 직감은 말해주었다, 그녀와 같은 사람들은 이른바 「천재」로 불린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나 스스로를 뛰어넘을 능력을 가졌다고 믿고 싶었다. 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이런 재능은 너무나도 사치스러웠으니까. 촌장의 발걸음이 멈췄다. 동굴의 가장 깊은 곳은, 비앙카 혼자서 가야만 했다——또 다른 「신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비앙카의 도착은 이 비밀스러운 의식의 본격적인 시작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10 걸음, 20 걸음, 30 걸음. 옆으로 돌고, 금이간 돌벽을 지나, 다시 모퉁이를 돌아간다. 주변은 매우 고요했다. 음악 소리도, 나막신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촛불의 끝에는, 붉은 바탕에, 검은색의 문양이 새겨진 커튼이 걸려있었다. ……이코넬 씨? 들어갈게. ——이는 그녀가 벼락치기로 배운 스페인어 중 하나였다. 하지만,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경계하며 장막을 걷자—— ——그곳엔 그녀가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