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버려오며 살아간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와 젖을 떼고, 따뜻하고 편안한 요람에서 나와, 자라난 고향을 떠나며 조금씩 변해간다.

서리달 27일.

포도달 13일.

수확달 13일.

안개달 18일과 19일.

바람달 8일.

이런 과거에의 배신을 통해, 「나폴레옹·보나파르트」라 불리는 자는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일찍이 이런 배신에 너무나도 익숙했고, 이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다.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든…… 만회할 기회가 있는 한,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의 사전에 「실패」란 단어는 없다. 이전의 전쟁에서는, 장비, 보급, 사기, 시운에 얽매여 무력하게 패배할 때도 있었고, 더 이상 재기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껴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지금에 이르러선, 그저 그가 밟아온 역사에 불과했다. 그는 러시아의 「동장군」에 패배했고, 적 연합군은 거침없이 진격해, 곧장 파리를 점령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엘바 섬에서 고향으로 몰래 돌아와, 부르봉의 군대는 밀물에 휩쓸린 것처럼 창끝을 돌려 그와 함께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워털루에서의 결전으로 백일왕조는 곧 종말을 맞이하게 되고, 그 자신은 가중처벌을 받아, 머나먼 남대서양으로 추방되고 말았다—— 그렇게 모두가 그 황제의 인생에 더 이상의 파란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을 때, 말년에 이른 그는 뜻밖에도 「뱀」의 실험에 휘말려 낯선 곳에서 다시금 자신의 권위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인생의 순풍은 도리어 그의 탐욕으로 하여금 또 다른 파란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는 이 강력한 힘을 영원히 손에 넣기 위해, 이 작은 세계를 제어하는 고대 문명이 남긴 장치를 작동하려 시도했고…… ……그렇게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모두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들고 말았다.
그럼에도, 황제는 낙담하지 않았다. 짧은 애도 끝에, 그는 이것이 더 위대한 여정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기 자신과 운이 좋아 살아남은 이들을 「화학적인 에너지」로 살아가는 생명체가 아닌, 「붕괴능」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로 바꿔버렸다. 황제의 지위는 여전히 견고했고, 제국의 군사력은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짧은 분쟁을 겪은 후, 백성들은 모두 한 마음 한 몸이 되었고, 그들의 충성심은 예전 「성가(聖歌)의 시대」보다도 더욱더 열렬하고 웅장해졌다. 새로 태어난 이들은 「벽」으로 바뀐 대지를 필요로 했지만——영원한 생명을 가진 불사의 황제에게 있어, 이런 느리고 확실한 확장은 그의 여유로움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의 황제는 극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는, 이 세계가 점점 그의 백성들에게 적합한 곳으로 바뀌어, 그의 적들 역시도 점점 약해지고, 그들의 공격성도 줄어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새에 틀어박혀있기만 하는 개미들, 지롱드파 같은 오합지졸, 낡은 것에 얽매여 새로운 생명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자들…… 놀랍게도 이들은 세계의 일부를 해체시켜, 제국의 신성하고 활력으로 가득한 영토를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었다. 그 누구의 희생도 없이 황제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황제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긴 인생에서, 이건 그저 하나의 새로운 「역경」에 불과했다. 적들은 제국의 존재가 그 신성한 영토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듯했다. 「가죽이 없는데, 털이 어디에 붙어있으랴(皮之不存, 毛將焉附)」——일반적으론 맞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벽」의 밖에서 제한적인 접근만 가능한 그들에게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국의 황제와 그 신하들은 이미 한 몸이 되어, 허공에서 사방으로 흩어져도, 핵심적인 기능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제국은 「새로운 생명」이란 원칙 위에 세워졌다. 그것은 결국 고치를 찢고, 나비가 되어 「세계」라는 이름의 새장을 벗어날 것이다. 그곳엔 질병도, 박해도, 곤궁도, 그리고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절대적인 이해와 절대적인 자유만이 있을 뿐. 그곳엔 오직 선지자와 선택받은 자만이 부활을 이룰 수 있고, 그 외의 하등한 생명들에겐 최후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지금, 제국의 백성들이자 황제인 유일무이한 생물이 딱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 타오를 듯한 힘이, 왜 이제서야 계승되고 발휘되었냐는 것이다. 결국, 이 힘의 원천은 「나폴레옹·보나파르트」도, 비슷한 시대를 살던 현자도 아니었다—— 그 힘은 수만년이나 숨겨져 있었다. 일식 중에 떠오르는 해처럼, 새벽이 왔을 땐 이미 달에 집어삼켜져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피안의 자야에 이르자, 마침내 웅장하게 떠오를 기회를 얻었다. ……필요 없는 불순물들은 전부 버리고, 생명에서 가장 건장한, 가장 기초적인, 가장 근원적인 부분만을 남겼다. 언어도, 아름다운 모습도 필요 없다. 그저 존재 그 자체가 진리의 상징이다. ——의심할 여지없는 모든 생명의 궁극적인 형태. 이를 요람에서 죽이려는 자는, 그 힘 앞에 스스로의 치욕을 자초할 뿐. 게다가 상대는 이 세계를 이루는 「배관」에만 의존하고 있었기에—— ——황제가 보기에, 그들은 이미 처음부터 진 것과 다름없었다. ……전장은 사방이 피 냄새로 가득했다. 병사들의 시체는 홍수를 막기 위한 모래주머니처럼 주변의 계곡을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선봉대의 임시 지휘관을 맡고 있는 이는 후퇴 명령을 내리는 게 불가능했다. 적들이 공중에서 내려와, 앵커 포인트로 향하는 최중요 입구를 점거하였기에, 모든 퇴로가 차단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지휘관은 자신의 병사들을 버리고 도망칠 생각이 아닌 한——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위해 「적들을 향해 돌격한다」와 「제자리에서 죽음을 기다린다」 중 하나를 고르는 수밖에 없었다. 적은 그들의 숨통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다. 앵커 포인트의 통로는 수비는 쉬웠지만, 공격은 어려웠다. 거품 세계의 맞은편에서 더 많은 병력을 투입시켜도, 진형을 갖추기도 전에 그 괴이한 적에게 모두 전멸할 게 분명했다. ……지금 이 순간, 북해의 고독한 섬에서, 그들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저 거대한 통로처럼 보이는 괴물이 별이 가득한 하늘에 나타났을 때, 병사들은 그저 잘려나간 세계의 잔재가 보이는 거라 생각했다. ——혹은 그 잘려나간 공간에 남아있던 기계장치나 몇 안 남은 취약해진 상태의 적이었을지도. 하지만 상대는, 요격도, 포격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것이 산꼭대기에 있는 성처럼 내려와, 앵커 포인트의 입구에서 무수히 많은 촉수를 내뻗자…… ……그들은 이 눈앞의 존재가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화국의 병사들은 용맹하게 싸웠다. 그들은 그저 충분한 시간을 벌기 위해, 하나가 쓰러지면 뒤가 그를 이어가며 싸웠다. 막 결혼한 사람, 얼마 전 부모가 된 사람, 형제가 없는 독자, 막 어른이 된 청년…… 북해의 고독한 섬에 고립된 병력은, 이런 순서로 아직 통제 가능한 예비 통로를 통해 한 명 한 명씩 전우를 탈출시켰다. 통과할 수 있는 정보량을 비교하자면, 이 예비 앵커 포인트 채널의 「대역폭」은 주 채널의 약 1만 분의 1에 불과했다—— 이는 최전방의 병사들이 한 시간을 버티더라도, 겨우 20명의 동료밖에 탈출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오늘, 거품 세계를 잘라내는 계획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이 작은 북해의 섬에는 3천이나 되는 공화국 최정예가 모여 있었다. ……이 말은 즉, 최전방의 병사들이 아무리 오래 버텨주더라도, 이 섬을 탈출하는 데 일주일의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이다. 물론, 「칼레도니아호」를 통해, 이 세계 특유의 바닷속에 존재하는 광풍과도 같은 파도를 직접 건너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런 추가 수단이 있어도, 이틀마다 50명을 탈출시키는 게 전부였다. ——비앙카와 성검 모두 이전의 행동으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으니, 금세 깨어나긴 어렵겠죠. 당신의 별을 얘기하는 자, 심지어 「칼레도니아호」의 선원들, 그리고 이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믿는 모두가 전선에 뛰어들었군요. 다들 정말 용감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이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란 것을. ……그래서 어떻다는 거죠? 만약 당신에게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렵게 빙빙 돌려 설명하는 건 그만두시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바로 말해주세요. ……열흘 전 슈뢰딩거 박사에게 들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제게 저 문을 죽일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모두에게 후퇴 명령을 내릴 필요가 있죠. ……뭐라고? 후퇴? 지금 전선에서 물러나라고? 제정신이야? 지금 배수진을 친 상태인데, 대체 어디로 물러가란 거야? ——설마 지금 딱 하나 남은 방어 진지를 포기하고, 너희들이 있는 지휘부로 돌아오라는 거야? 이건 진짜 군사적 자살행위라고, 알고 있어? ……당황하지 마세요, 왈라키아인. 의장이 후퇴 명령을 내린 이유는—— ——이제부터 제가 적을 직접 상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고고학자 따위가? 옷 하나 갈아입은 걸로 설득이 된다고 생각해? ……대체 뭘 생각하는 거야? 우선, 모두에게 사과드릴 필요가 있겠군요—— 제 「샹폴리옹」이란 이름은 실은 후세의 제 동포로부터 빌려온 이름입니다. 다시 한번 제 소개를 하도록 하죠, 불굴의 전사분들, 용맹한 군인분들—— 제 이름은 「나플레옹」, 성은 「보나파르트」——코르시카 섬 출신입니다. 저는 일반적인 「별을 얘기하는 자」와는 다릅니다. 여러분의 눈앞에 보이는 괴물이 25살일 때 버림받은 「보통의 인생」이죠. ——수많은 「배신」으로 잊혀진, 가장 처음의, 가장 근원적인 성분입니다. 예비 통로를 써서, 앵커 포인트로 조정한 덕에, 이 괴물에게 버림받았을 때 당시의 상태로 돌아가 신체 구조의 허수 극성을 완전히 반전시킬 수 있었죠. 간단히 말하자면, 이제 여러분 앞의 괴물은 더이상 저를 털끝만큼도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간단한 접촉만으로도 그것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죠. 그런…… 그렇게 편리한 방법이 있는데, 왜 이제 와서 얘기하는 거야?! ……지금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지 몰라?! ……미안해요. 여러분에게 이런 참혹한 희생을 치르게 해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이 무엇인들……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려 하니—— ——결국 망설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당신…… 저거랑 같이 죽을 생각인 거야?! ……정확히 말하자면, 저의 「장례식」에 저것도 함께 묻어버리는 것이죠. 신체의 물리적인 구조의 허수 극성을 조정한다——이것만으로도, 이미 100% 자살행위입니다. 지금의 저는 그저 독약을 삼킨 산송장일 뿐입니다—— ——단지 제 자신을 위해, 조금이라도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묫자리를 찾고 있을 뿐이죠. ……나와 같은 「나폴레옹·보나파르트」로 있는 존재여. 그대는 지금 나로 인해 치욕을 느끼는가? 그대는 지금 나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는가? 긴 일생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정한 그대여, 이제 반대로 자신의 과거가 그대를 부정할 것이니—— ——이미 모든 신하와 백성들과 한 몸이 되어, 언어 기관을 완전히 잃어버린 그대는, 지금 이 순간, 수치와 분노를 느끼고 있으려나? 아니면 한 걸음씩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그 육중한 몸을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으려나? ……아, 어쨌든 더 이상 내겐 중요하지 않겠군. 난 그저 그대가 알아주길 바란다네—— 그대는 잘못된 길을 걸었기에—— 그대가 만들어간 역사, 그대의 초심, 그대가 처음 꾼 꿈 모두가—— ——스스로의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대의 파멸을 원한다는 것을. ……비앙카 양. 당신이 다시 성검을 쥐고 일어날 즘이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로 조금 슬퍼하게 되겠죠. 우리들은 여행의 동료, 세계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모험자였어요. 하지만 오늘, 제 망설임 때문에, 이 세계가 불필요한 고통을 겪고 말았네요. 하지만, 어쩌면—— 만약 당신이 저였다면—— 분명 고개를 높이 들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굳건하게 나아갔겠죠? 이 방법 이외에, 이 불완전한 이야기를 완전하게 만들 방법이 없다는 걸, 당신은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럼, 이 불완전한 세계에도, 모두가 바라는 내일이 찾아올 수 있겠죠. 비앙카…… 그리고 영원히 당신 곁에 있어줄 리타…… ……당신들도 그렇게 생각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