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높게 떴다. 나찰인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매우 작은 소리였지만, 그를 곁에서 보고 있는 이소상의 귀를 피해 갈 순 없었다. 「일어났습니까?」 「아아, 일어났다.」 나찰인은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이소상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수회 반복하더니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기, 나찰인들은 다들 눈 뜨고 잡니까?」 「……뭐?」 「말을 절반쯤 하다 잠들더니, 눈은 그대로 뜨고 있고, 깜짝 놀랐습니다. 손을 흔들어도 반응도 없고.」 그녀는 말하면서, 희고 가는 손바닥을 나찰인의 눈앞에 흔들었다.

「……아, 내 의식이 『허공만장』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의심 가는 게 있어서, 답을 찾기 위해 필요했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이 법구는 강력하지만, 대가도 크다.

『허공만장』은 커다란 진리를 담고 있지만, 매번 탐색할 때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정신이 약하면, 의식이 『허공만장』에게 삼켜지게 될 우려가 있다.」

「그 외에도, 천명의 세 번째 보물, 『천화성재(天火聖裁)』, 는 산과 바다를 가를 힘을 지녔다. 하지만 그 신의 불꽃이 방출되면, 피할 수 없는 반동도 따라오며, 그 사용자도 화를 입게 된다.」

「……너를 치료하는데 썼던 『흑연백화』도 그렇다. 그 특별한 능력은 나도 완전히 파악한 건 아니지만.

전에 내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 썼던 적이 있다. 그 결과, 지금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너희들 말로는 아마 내상이라고 하는 게 맞겠군.

지금도 어느 시점마다, 노쇠해진 몸을 원래대로 젊게 만들고 있고, 그 반동을 회복하는 데 수십 일 정도가 필요하다……」

「내상……?」 (진기의 흐트러짐으로 인한 회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em italic]……주화입마의 전조인가?[/em] 어떤 생각이 떠오르더니, 순간 나쁜 마음이 이소상의 마음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

갑작스러운 감정들은 소녀의 마음을 집어삼켰다.

순간의 놀라움, 후회, 고통 그 밑에, 절망적으로 강렬한 살의가 있었다.

주화입마자에겐 죽음만이 유일한 자비이다——

이는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사부가 지치지도 않고 계속 가르쳤던 것이자, 태허일맥(太虛一脈)의 사명, 그 자유로운 『자재문(自在門)』의 유일한 철칙이었다.

소상의 『검심』이 순간 명경(明鏡)의 경계에 이르렀다.

그녀의 오른손이 곧바로 뻗어 나와, 계검(啓劍) 『열공(裂空)』의 형태를 취하였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손은 어떠한 마(魔)라도 무찌를 수 있는 무적의 무기가 되어있었다——

「아니……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이 법구의 부작용일 뿐이니까.

그에 대해선 이미 『허공만장』을 통해 답을 찾아냈다.」

나찰인은 손을 뻗어, 우아한 움직임을 보였다.

「『흑연백화』의 힘을 반전시키면 된다. 정밀하게 다루는 게 어려울 뿐.

내 법구는 의태 된 것이라, 원본보다 효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더 많은 계산이 필요하다……」

나찰인은 얘기를 계속했지만, 소상에겐 다시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되어있었다.

「에이, 나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주화입마만 조심하시면 됩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렵네요. 그 법구를 쓰면 대체 어떤 내상이 생기는 겁니까?」

나찰인은 어리둥절해 하더니, 잠시 생각을 하곤 답했다. 「알려줄 수 없다.」 「쳇.」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소상을 보며, 나찰인은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가슴이 아리는 게 느껴졌다.[\s]

딱히 닮은 곳도 없어 보이는 동양인 소녀와 함께 있는 데도, 『그녀』가 계속 떠올랐다.

[em italic]아아, 어느샌가, 이렇게나 세월이 흘러버렸군……[/em] [em italic]카렌……[/em] 나찰인은 약간 붉은빛이 드는 황색의 말라버린 모래를 멍하니 쳐다봤다. 눈앞에 매력적인 미소와 아름다운 눈을 가진 그 소녀가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야, 위대한 발명가씨——」

그렇다. 그녀는 그를 그렇게 불러왔다……[\s]

그의 기억 속, 소녀는 손을 뒤로한 채 서있었고, 그녀의 은빛 머리칼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비웃진 말아줘.」 전기 해금: 「카렌」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의 귀에 남아있었다. 그때의 시간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조금도 나아가지 않은 것 같았다.[\s]

하지만, 지금은 이미 30년도 넘게 지났다.

어느샌가, 나찰인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李) 소저.」 나찰인은 스스로를 억지로 깨웠다. 비록 그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남고 싶어 했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추억을 벗어던지는 게, 허공만장과의 싸움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최근 며칠간 연달아 법구를 써서, 진기가 고갈되었다.

신주에 진기를 전달하는 무공이 있다고 들었는데, 쓸 줄 아는가?」

천명과 신주 사이에 전쟁 있었을 때, 나찰인은 금방 알아차렸다……[\s]

같은 『진기』라는 힘을 다루는 법에 있어, 동방과 서역 간에 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그는 이를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서역은, 진기를 역병이라 여겨,

그 오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으며, 그에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켜왔다.[\s]

반대로, 동방은 그걸 받아들여, 이용했고,

신체의 능력을 높이는데 사용하였다.

분면, 천명에 비하면, 신주의 과학기술은 뒤처져있었다.

하지만, 진기에 대한 이해에 있어선, 동방이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을까?

「아, 그게……」 이소상은 고민했다.

「자신의 진기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 말입니까?

미리 말해두는데, 태허검파가 부족한 건 아닙니다만,

단지…… 다른 무공들과는 좀 다릅니다.」

「자재문의 사조는 적연진인입니다. 들은 바로는, 그녀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마를 없앤다는 목적만을 가지고 천하를 돌아다녔습니다. 거기서 그녀가 평생을 경계했던 건, 주화입마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만든 무공은 진기를 단련하지 않습니다.」 「뭐? 그건 처음 듣는군.」 「그야 외국에서 오셨으니, 모를 수도 있죠——하하!」 무언가가 소녀의 웃음보를 터뜨린 듯, 소상은 신나게 웃어댔다. 그리곤 다시 얘길 계속했다. 「그러니까——헤헤——저흰 다른 문파의 여러 무공들처럼 단전을 단련하지 않습니다. 대신, 몸을 진기가 다닐 수 있는 통로로 사용합니다.」

「그거 아십니까? 이른바 『선천일기(先天一氣)』의 본질, 즉 생명의 원천이 되는 것이죠.

그것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나뭇잎 하나에도, 꽃 한 송이에도 진기가 존재합니다.」

나찰인은 살짝 미소 지었다. 그에게 있어, 붕괴——동방에서 말하는 『진기』란, 생명력을 의미한다기보다, 생명의 파괴자란 표현이 알맞았다. 하지만, 그는 소녀의 생각을 고치게 할 필요를 못 느꼈다. 「태허검심과 검형을 대성하고 나면, 주변의 진기를 취하여, 경락을 통해 흐르게 할 수 있고, 이를 큰 파도처럼 솟구치게 하거나, 작은 물줄기처럼 흐르게 하는 등, 자기 뜻대로 제약 없이 부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무공들보다, 태허검기가 강한 겁니다. 단전에 진기를 모아두지 않았음에도 말이죠.」 이소상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진기를 전달하는 무공은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네 설명에 따르면,」 나찰인은 잠깐 생각했다. 「진기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면, 자연적으로 있는 진기를 가져와 내게 줄 수 있지 않나?」 「어…… 될 것 같기도 한데? 근데 어떻게 해야.」 「내가 알려주겠다.」 「당신이 말입니까?」 소상은 매우 의아해했다. 「정말입니까?」

「네 무공의 체계에 맞춰 조율해야 하기에, 약간의 설명만 있으면 된다.

동방과 서역의 진기에 대한 이해에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그대로니까.」

「내 두뇌와 『허공만장』을 합쳐, 태허검기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진기를 전달할 방법을 찾는 것도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소상은 그를 멍하게 쳐다보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할 말을 잊었습니다. 당신네 나찰인들은…… 아, 맞다, 거긴 천명파 하나뿐이니, 강호의 도의 같은 건 잘 모르겠군요.」

「무공은 바깥사람에게 함부로 전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매우 금기시되는 일이에요!

만약 누구나 태허검기를 익힐 수 있게 된다면, 신주엔 난리가 날 겁니다.」

나찰인은 순간 흠칫했다. 그는 신주에 그런 규칙이 있는 줄 몰랐다. 「……미안하군.」 「어, 딱히 당신을 나무라려는 건 아니고…… 저기…… 그저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서인 것뿐이죠?」 「이해한다, 이 소저. 보름 정도 쉬면서, 내공을 조율하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은 계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를 지금 상황으로 만든 건, 진짜 「흑연백화」였다.[\s]

만약 모조품으로 반전을 시도했다면, 아직 수련이 부족하기에 실패했을 것이고, 결국 동방의 신기한 무공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기——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까진, 그냥 소상이라 불러도 됩니다……」」 이소상은 자기도 모르게 뾰로통해하더니, 이내 표정이 밝다가 어두워지다가를 반복하면서 부끄러워했다.

나찰인이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소모해가며, 매일 치료해 주었다는 걸 떠올렸는지, 그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태허검기』는 바깥사람에겐 절대로 알려줘선 안 되는 것이었다.

소녀는 잠깐 망설이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나찰인, 바로 출발합시다, 더 이상 지체할 순 없습니다!」

「대략 한나절 거리니, 오늘 밤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말도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거니……

제 사부님을 뵙게 되면, 당신을 치료해달라고 부탁해 보겠습니다. 만약 사부님이 거절한다면, 그땐…… 그땐……」

이소상은 생각을 거듭하더니, 입술을 깨물곤, 흥분한 듯 말했다. 「사부님 말을 무시하고, 제 맘대로 할 겁니다!」